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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낡아빠진 에너지 복지, 바뀌지 않는 이유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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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탁예진 작성일20-06-13 20:09 조회67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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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향신문]
이정필 에너지기후정책연구소 연구부소장 인터뷰


이정필 에너지기후정책연구소 부소장 /김기남 기자

기후변화가 부른 폭염과 한파는 에너지 빈곤층에게 치명적이다. 기후변화 취약계층은 에너지 빈곤층이기도 하다. 현재 나타나고 있는 이상기온 현상은 이들의 생존을 위협한다. 기후변화는 ‘위기’를 넘어 ‘비상사태’로 치닫고 있지만, 빈곤층을 위한 에너지 지원정책은 과거에 머물러 있다. 에너지 복지는 왜 제자리를 맴돌고 있을까. 이정필 에너지기후정책연구소 연구부소장(43)의 이야기를 들었다. 인터뷰는 지난 6월 9일 서울 마포구 에너지기후정책연구소에서 진행됐다.

-올여름 역대급 폭염 예보가 나온다. 폭염 대책을 살펴봤나.

“지자체마다 대책을 내놓고 있는데 이전 대책과 차별성이 없다. 당장 올해 여름을 어떻게 나겠다는 것인지 불투명하다. 다수를 한 곳에 밀집시키는 무더위 쉼터 방식을 그대로 활용할 것인지, 아니면 더 많은 비용을 들여 재원과 인력을 투입해 취약계층을 케어하는 방식을 쓸 것인지 명확한 방향이 안 보인다. 이번 폭염은 코로나19 국면에서 처음으로 맞는 ‘재난’이다. 어느 때보다 에너지 빈곤층에 대한 맞춤형 대책이 필요한 시기인데 너무 안이하게 생각하고 있다.”

-시중에 다양한 에너지 복지정책이 나와 있는데.

“한국의 에너지 복지정책은 숫자만 놓고 보면 평균 이상은 된다. 에너지 바우처 사업에 전기 요금 할인, 에너지 효율성 개선사업까지 여러 가지 있다. 그런데 그 지원방안이 유효하지 않다는 데 문제가 있다. 하나같이 질이 낮고 효용성이 떨어진다. 옵션이 여러 개여서 지원망이 탄탄한 것처럼 보여도 실제 에너지 빈곤층에게는 도움이 안 된다. 틈도 많고 사각지대도 많다. 예컨대 현재 시행되는 복지정책은 전력과 가스 위주의 요금 감면과 같은 현금성 지원을 중심으로 짜여 있다. 에너지 빈곤 가구 가운데에는 등유나 프로판가스를 사용하는 가구도 있다. 이런 가구들은 혜택에서 제외된다. 집을 고쳐 에너지 효율성을 높이는 에너지 효율성 개선사업도 현실성이 떨어진다. 집주인의 동의 절차를 밟아야 하고, 어렵게 수리를 했더라도 계약 기간이 끝나면 나가야 한다. 그나마 이런 에너지 지원책이 있다는 사실조차 모르는 가구가 많다. 그럴 수밖에 없는 게 에너지 빈곤 가구 상당수가 독거노인 가구다. 누군가 적극적으로 알려주지 않으면 신청을 못 한다. 에너지 빈곤 가구의 특성을 감안하지 않고 지원자격을 정하고 까다로운 절차를 만들어 지원하는 초기 방식이 지금까지 이어져 오고 있다. 노무현 정부 때 ‘에너지 빈곤 제로 비전’을 선포한 적이 있는데 한국의 에너지 복지는 여전히 그 수준에 머물러 있다.”

-에너지 빈곤 사각지대는 여러 차례 지적된 바 있다.

“에너지 빈곤 문제가 심각하다는 사실을 모르는 사람은 없다. 그럼에도 한국사회는 ‘누구를 에너지 빈곤층으로 볼 것인가’에 대한 답도 찾지 못한 상태다. 영국에서 정한 에너지 빈곤층 정의를 그대로 들여와 통용하고 있는데, 우리 현실과는 여러모로 맞지 않는다. 국내 실정에 맞는 에너지 빈곤에 대한 기준이 필요하다. 그러려면 에너지 빈곤 가구에 대한 면밀한 실태조사가 필요한데 지금은 시민단체를 중심으로 몇몇 지역의 표본 가구를 조사하는 게 전부다. 중앙정부든, 지방정부든 에너지 빈곤 가구에 대한 실태조사부터 제대로 할 필요가 있다.”

-복지혜택이 수요자들에게 고루 돌아가지 못하는 이유는 뭔가.

“에너지 복지정책을 중앙집권적인 에너지 시스템 안에 넣어서 설계하기 때문이다. 에너지 복지는 지역밀착형으로 접근해야 할 사안이다. 에너지 분권 얘기가 나오는데 사실 에너지 복지도 지방정부에게 권한과 책임을 넘겨야 원활히 돌아갈 수 있다. 에너지 복지는 어렵고 복잡해 보이지만 본질은 취약계층과 거주 공간을 면밀히 살펴보는 데 있다. 공무원이든 활동가든 지역사회를 잘 아는 인력이 움직여야 가능하다. 에너지 복지를 아예 기초자치단체에 맡겨야 한다는 주장이 나오는데, 설득력이 있다. 물론 책임만 떠넘기자는 게 아니다. 에너지 복지를 펼 수 있는 권한과 재정, 인력도 함께 따라가야 한다.”

-에너지 복지법은 매번 국회에서 발의되는 법안이다. 에너지 복지 조례를 만든 지자체도 있는데.

“당연한 말이지만 법안 발의만으로는 의미가 없다. 이제껏 모든 에너지 복지법안이 발의 뒤 계류·폐기 과정을 밟았다. 복지 확대를 반대하는 보수 야당 탓으로만 돌릴 수도 없다. 지난 정부와 문재인 정부, 현 여당인 민주당 역시 에너지 복지를 우선순위에 놓지 않았다. 에너지 복지 이슈를 산업통상자원부 이슈로 볼 것인지, 보건복지부 관할로 볼 것인지 교통정리를 해야 하는데 이마저도 답보 상태다. 에너지 복지 조례는 없는 것보다 낫지만 태생적인 한계가 있다. 조례가 갖는 힘은 크지 않다. 현장에서 에너지 빈곤 문제를 접할 때마다 나아진 게 없다는 사실을 체감한다.”

-21대 국회는 다르지 않을까. 그린뉴딜 이슈도 있고.

“변화가 있길 바란다. 이번에도 에너지 복지법안은 나올 것이다. 하지만 큰 기대는 하지 않는다. 총선 과정에서도 여당은 기후변화 이슈에 소극적인 태도로 일관했다. 민주당 의석이 더 늘었다고 해서 얼마나 전향적으로 에너지 복지에 관심을 쏟을지 모르겠다. 당론도 달라지지 않았고, 당을 이끄는 핵심 인사들도 전과 같다. 에너지 복지를 코로나19 문제처럼 절실하게 대하지 않는다면 변화는 생기지 않을 것이다. 이제까지 정치권에서는 에너지 복지 문제를 에너지 산업 관점으로 접근해 다뤄왔다. 이른바 중앙정부의 에너지 ‘공급형’ 정책 틀을 따라왔다. 현 공급형 정책은 단발적인 미봉책에 불과하다. 근본적인 개선책이 될 수 없다. 코로나19를 기점으로 에너지 복지에 대한 시각도 달라질 필요가 있다. 지금이 에너지 기본권을 강화할 수 있는 적기다. 예컨대 기본소득 도입만 해도 예전 같으면 ‘빨갱이’ 소리를 들었을 정책이다. 하지만 지금은 공론화됐지 않나. 에너지 빈곤 문제도 마찬가지다. 에너지 복지를 공론장에 꺼내놓고 과감한 변화를 시도할 필요가 있다.”

반기웅 기자 ban@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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