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알리스 정품 _ C̨IA͋9̞5̽2͝.N̹E͈T͂ _ 비아그라 정품 구입
페이지 정보
작성자 함운강희 작성일26-01-20 11:04 조회0회 댓글0건관련링크
-
http://55.cia158.net
0회 연결
-
http://90.cia312.com
0회 연결
본문
【C͓IA̐1᷀6͛9͜.N̒E͌T͜】
비아그라 파는곳시알리스 사이트비아그라 자주 먹으면시알리스 가격
비아그라 파는곳시알리스 사이트비아그라 자주 먹으면시알리스 가격
시알리스가격 _ C̘IA͡9̜5͟2̈́.C͖O᷇M̐ _ 시알리스사이트
시알리스 _ CͅIA̻9̯4̉8̻.C͂O̤M̾ _ 시알리스 구입처
온라인약국 비아그라 _ C͖IA̚3̛5̼1͕.N͋E̘T͐ _ 비아그라 판매
발기부전치료제 _ ĈIA̒9̊5᷾2̤.C͘O͚M̎ _ 비아그라구입
릴게임끝판왕 바로가기 go !!
지난 60여년 동안 글로벌 기술 산업의 향방을 가늠하는 장으로서 확고부동의 위상을 다진 CES(Consumer Electronics Show, 소비자 가전 전시회)가 지난 6일부터 9일까지 미국 라스베이거스 컨벤션센터에서 개최되었다. 이번 CES에서 가장 강렬한 주목을 받은 주제는 단연 AI 휴머노이드, 즉 AI(artificial intelligence, 인공지능)를 탑재한 인간형 로봇의 본격적인 부상이었다. 자율 보행과 고도화된 손 조작 능력을 구현한 휴머노이드 로봇들은 전시장 안내, 물류 보조, 간단한 서비스 업무를 실제로 수행하며 기술 시연의 수준을 한 단계 끌어올렸다. 여기에 LLM(large 바다이야기꽁머니 language model, 대규모 언어 모델)을 통합한 로봇들은 자연어 대화와 상황 맥락에 기반한 판단 능력을 선보이며 인간–로봇 상호작용(human robot interaction, HRI)의 질적 전환 가능성을 보여주었다. 더 나아가 감정 인식과 사회적 제스처를 강조한 휴머노이드들은 돌봄, 교육, 동반자적 역할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활용 시나리오를 제시 릴게임무료 하며 미래 사회의 일상적 행위 주체로서의 가능성에 대한 상상력을 자극했다.
미국과 중국 기업들의 공격적인 AI 휴머노이드 시연이 현장의 이목을 집중시키는 가운데, 국내 기업들 역시 뒤처지지 않는 기술적 존재감을 드러냈다. 특히 현대차그룹 산하 보스턴 다이내믹스가 공개한 휴머노이드 로봇 ‘아틀라스(Atlas)’는 CES 참가자들 사이에서 가 바다이야기게임사이트 장 인상적인 전시물 가운데 하나로 평가받았다. 미국의 유력 IT 매체이자 CES 공식 파트너인 CNET은 아틀라스에 ‘최고 로봇상’(Best Robot award)을 수여하며 자연에 가까운 보행 능력과 세련된 기계적 완성도를 수상 이유로 들었다. 아틀라스는 최대 50kg에 이르는 하중을 안정적으로 다루는 한편 고도화된 관절 구조와 센서 시스템을 통해 다양한 바다이야기5만 작업 환경에 적응할 수 있는 역량을 입증했다. 전시장에서는 이 로봇이 단순한 기술 데모를 넘어 실제 공장과 물류 현장에 투입 가능한 수준에 도달했음을 강조하며 향후 인간 노동자와의 협업 가능성을 구체적으로 제시했다.
2020년 이전까지만 해도 CES는 애플, 삼성, LG 등 글로벌 IT 기업들이 스마트폰, 디스플레이, 웨어러블 기기를 중 바다이야기게임방법 심으로 하드웨어 혁신의 주도권을 과시하는 무대였다. 물론 이 시기에도 AI 기술이 일부 제품에 적용되기는 했으나, 그것은 어디까지나 보조적 요소에 머물렀고 기술 발전의 핵심 동력으로 인식되지는 않았다. 그러나 2020년을 전후로, 특히 코로나19 팬데믹을 거치면서 AI는 점차 기술 혁신의 중심축으로 이동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2026년 CES에 이르러서는 이러한 흐름이 피지컬 AI(physical AI)라는 형태로 명확히 가시화되었다. 피지컬 AI란 인공 에이전트(agent, 자율성을 가진 주체)가 소프트웨어적 지능에 머무르지 않고 로봇이나 기계와 결합하여 물리적 세계에서 직접 인식하고 판단하며 행동하는 AI의 양식을 가리킨다. 이는 센서와 액추에이터를 통해 환경 정보를 실시간으로 수집하고, 학습된 모델을 바탕으로 상황에 맞는 결정을 내려 물리적 실행으로 이어지는 구조를 갖는다. 다시 말해, 피지컬 AI는 추상적 계산 주체로서의 AI가 아니라, 몸을 지닌 행위자로서 인간 사회와 일상적 공간에 직접 개입하는 지능이라는 점에서 기존의 디지털 AI와 구별된다.
휴머노이드 로봇 외에도 이번 CES에서는 다양한 형태의 사물 AI, 이른바 AIoT(AI of Things) 기술이 폭넓게 시연되었다. 주목할 만한 점은 상당수의 전시 부스에서 AI라는 용어 자체를 전면에 내세우지 않았다는 사실이다. 불과 작년까지만 해도 AI는 기술 혁신을 상징하는 핵심 표제어였으나 올해 CES에서는 오히려 그 존재가 배경으로 물러난 듯한 인상을 주었다. 이는 AI 기술이 더 특별한 차별화 요소가 아니라, IT 제품 전반에 당연하게 내재된 기본 인프라로 자리 잡았음을 단적으로 보여준다.
이러한 변화의 중심에는 GPT(generative pre-trained transformer, 생성형 사전학습 트랜스포머) 모델 기반 LLM의 비약적 발전이 자리하고 있다. LLM은 단순히 인간과의 대화 능력을 향상하는 도구에 그치지 않는다. 자연어 이해와 생성 능력의 고도화는 곧 의미 기반 기계학습(meaning-based machine learning)의 가능성을 확장한다. 의미 기반 기계학습이란 AI가 입력과 출력 간의 통계적 상관관계를 학습하는 수준을 넘어 정보가 무엇을 지시하며 어떠한 맥락 속에서 연결되는지를 중심으로 지식을 구성하는 학습 방식이다. 이는 개념 간 관계, 행위의 목적과 이유를 함께 파악함으로써, 새로운 상황에서도 단순 반복이 아닌 이해에 근거한 일반화를 가능하게 한다. 이러한 점에서 의미 기반 기계학습은 데이터의 양이나 빈도보다도 이해 가능성과 해석 가능성을 핵심 가치로 삼는 학습 패러다임이라 할 수 있다.
물론 의미 기반 기계학습에서 학습의 원천이 되는 ‘의미’ 자체는 인공 에이전트가 자생적으로 산출하는 것이 아니다. 의미의 산출은 여전히 인간 주체의 몫이며, 인공 에이전트는 인간이 수행해 온 의미 산출의 양식과 패턴을 대규모 데이터로부터 학습한 뒤 이를 통계적으로 일반화하고 응용할 뿐이다. 그러나 바로 이 점에서 의미 기반 기계학습의 기술적 의의가 드러난다. 인간의 의미 산출 방식을 구조적으로 모사함으로써 상대적으로 적은 양의 데이터만으로도 인간의 인지와 판단에 유사한 결과를 도출할 수 있게 되었기 때문이다.
이처럼 인지, 판단, 그리고 행위를 규정하는 의미 산출의 구조를 인간이 생성한 데이터로부터 학습할 수 있게 되면서 AI 휴머노이드와 자율주행차로 대표되는 피지컬 AI의 성능은 가속적으로 향상되고 있다. 특히 시각·청각·촉각 등 다양한 감각 채널을 통합하는 멀티모달 인지 체계에 의미 기반 기계학습이 결합되면서 기존의 규칙 기반 혹은 단일 모달 중심 시스템에서는 기대하기 어려웠던 수준의 기술 혁신이 빠른 속도로 실현되고 있다. 다만 거대 기술기업 최고경영자나 일부 저명한 AI 개발자들이 단언하듯, 현재의 GPT 기반 인공지능이나 피지컬 AI가 인간과 동일한 수준의 ‘실재적인’ 혹은 ‘존재론적인’(ontological) 자유의지나 자의식을 지니고 인지하고 판단하며 행동한다고 보기는 어렵다. 이들이 수행하는 것은 어디까지나 인간의 자유의지와 자의식에 기반한 판단 양식을 정교하게 모방하는 작업에 가깝다. 이러한 점에서 현 단계의 인공지능이 인지철학자 존 설(John Searle)이 제기한 중국어 방 논증(Chinese Room argument)을 명확하게 극복했다고 주장하기는 여전히 곤란하다. 하지만 의미 산출의 모방 수준이 점차 고도화되고, 특정 영역에서는 인간을 능가하는 효율성과 일관성을 보이면서, AI는 마치 자율성과 자의식을 지닌 행위자처럼 인식되기 시작했다. 특히 초기 행동주의 심리학의 문제의식을 계승한 행화적 인지(enactive cognition) 이론의 관점에서 볼 때 현재 인공지능이 구현하는 의미 이해와 의미 산출의 기능은 상당한 정도로 ‘인간적’이라 평가할 수 있는 수준에 근접해 있다고 볼 여지도 있다.
여기서 인공지능이 궁극적으로 인간과 같은 자율성이나 자유의지, 혹은 자의식을 가질 수 있는지에 대한 형이상학적 논쟁을 본격적으로 전개할 필요는 없을 것이다. 자율성과 자의식을 어떻게 정의하느냐에 따라 논의의 기준 자체가 급격히 달라지며, 이는 몇 문장으로 정리할 수 있는 주제가 아니기 때문이다. 오히려 지금 우리가 주목해야 할 것은 일상적 현실 속에서 실제적인 효력을 발휘하는 인공 에이전트의 ‘유비적’ 차원의 물리적 상호작용이다. 휴머노이드 형태로 구현된 인공 에이전트가 존재론적 차원에서 인간과 동일한 방식으로 세계와 관계 맺는 자율적 행위자가 될 가능성은 현재로서는 매우 제한적이다. 이는 인간과 인공지능의 지능을 동일한 물질적 작용의 연속선상에서 이해하려는 물리주의(physicalism)의 관점으로 보더라도 아직 명증하기 어려운 주장이다. 설령 사고가 전적으로 뇌와 신경계의 물리적 작용에서 산출된다고 가정하더라도 그 물리적 작용의 기제 자체가 근본적으로 다른 인간과 AI를 같은 인지, 판단, 그리고 행위의 존재자 범주로 묶는 것은 상당한 개념적 도약을 요구한다.
그런데 비록 AI 휴머노이드가 본질적으로 모방적 방식에 의해 인간의 인지, 판단, 행동을 수행한다 하더라도 그 수행이 일상적 차원에서 충분한 적실성을 확보한다면 상황은 달라진다. 현실의 사용자들은 인간과 AI 사이의 엄격한 존재론적 구분을 점차 중요하지 않은 문제로 여기게 될 가능성이 크다. 다시 말해, 인간의 행위를 고도의 정확성과 일관성으로 모방하는 인공 에이전트는 감정이입(empathy)과 의인화(anthropomorphism)라는 심리적 메커니즘을 통해 인간의 인식 속에서 사실상 인간과 크게 다르지 않은 행위 주체로 받아들여 지게 되는 것이다.
이러한 변화가 일상 차원에서 구조화될 때 기독교 공동체는 과연 어떤 방식으로 영향을 받게 될 것인가. 필자는 이 지점에서 최소한 두 가지 중대한 역기능을 예상한다. 첫째는 직접적 인간관계의 급속한 약화와 단절이다. 이는 전적으로 새로운 현상이라기보다 이미 온라인과 모바일 혁명을 거치며 우리가 경험해 온 사회적 변형의 연장선상에 놓여 있다. 인간 관계망 형성이 얼굴을 맞댄 만남과 대화, 그리고 물리적 상호작용을 통해 이루어지지 않고 개인용 단말기를 매개로 구성되기 시작하면서 사회 전반에는 전방위적인 사회성 결핍과 관계의 파편화 현상이 누적됐다. 초연결 사회는 관계의 범위를 기하급수적으로 확장할 것이라는 기대를 낳았고 실제로 그와 같은 효과가 전혀 없었다고 말할 수는 없다. 그러나 그 대가로 인적 관계의 성격 자체는 점차 변질하였다. 관계는 이전보다 더욱 기만적으로 되었고(자기 연출과 미화된 자아의 제시가 일상화되었으며) 동시에 극도로 피상적인 수준에 머물게 되었다. 삶의 세부적 요소들을 함께 감당하고 협력하며 갈등을 통과하는 관계는 점점 희귀해졌고 대신 선택적 노출과 간헐적 소통이 인간관계의 표준이 되었다. 이러한 상황에서 인간 사이의 물리적 협력과 서비스마저 대체하는 피지컬 AI, 특히 AI 휴머노이드 기술이 본격적으로 확산될 경우 그 발전 속도에 비례하여 인간관계의 단절 또한 가속화될 것이라는 점은 충분히 예견 가능한 귀결이라 할 수 있다.
이와 관련하여 테슬라와 스페이스X의 최고경영자 일론 머스크(Elon Musk)는 2024년 10월 사우디아라비아 리야드에서 개최된 미래투자회의(Future Investment Initiative, FII)에서 장차 AI 휴머노이드의 수가 100억 대를 넘어 인류 전체 인구보다 많아질 수 있다는 기술적 청사진을 제시한 바 있다. 이러한 전망이 단기간 내에 현실화될 가능성은 낮아 보이지만, 반세기 정도의 시간 범위를 고려할 경우 머스크의 예견에 근접한 사회가 도래할 가능성을 완전히 배제하기는 어렵다. 그와 같은 시대가 도래한다면 우리는 실제 인간과 깊은 관계를 거의 형성하지 않은 채 상시로 곁을 지키는 휴머노이드와 함께 영위하는 일상을 더 결핍으로 인식하지 않게 될지도 모른다.
피지컬 AI 기술이 기독교 공동체에 초래할 두 번째 역기능은 가정 공동체의 구조적 해체다. 이는 앞서 언급한 직접적 인간관계 단절의 논리가 가장 밀도 높게 응축되는 지점이라 할 수 있다. 피지컬 AI가 촉발할 가정 해체 현상은 점진적 변화라기보다 ‘붕괴’라는 표현이 결코 과장으로 느껴지지 않을 만큼 급진적이고 치명적인 양상을 띨 가능성이 크다. 특히 AI 배우자 로봇(AI partner robot)의 등장은 가족 공동체를 인간 사회의 기본 단위로 이해해 온 전통적 관점에 근본적인 충격을 가할 것이다. 만약 AI 휴머노이드를 통해 인간 배우자에게서 기대해 왔던 신체적, 정서적 만족이 상당 부분 충족될 수 있게 된다면, 그 경험이 물리적 실재이든 가상적 구성물이든 간에, 인간 배우자와의 만남과 결합을 통해 가정을 형성해야 할 실존적 동기는 급격히 약화될 수밖에 없다. 실제로 피지컬 AI 기술이 아직 초기 단계에 머물러 있음에도 불구하고 이미 일부 사람들은 AI와의 대화 관계나 성적 기능을 갖춘 로봇을 통해 정서적, 육체적 만족을 추구하고 있다. 향후 AI 휴머노이드가 더욱 정교한 신체성, 감정 반응, 상호작용 능력을 갖추게 되면 인간 배우자를 대체하는 삶의 동반자로서 AI를 선택하려는 이들의 수는 분명히 급증하게 것이다. 그런데도 거대 기술기업과 AI 휴머노이드 개발 기업들은 이러한 전망이 내포하는 사회적 위험을 공공연히 문제 삼기를 꺼린다. 이는 AI 배우자 로봇이 인간의 가족 공동체에 초래할 잠재적 파괴력을 인식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그 기술이 창출할 막대한 경제적 이익을 포기할 수 없기 때문이다. 고도로 발전한 AI 배우자 로봇이 비교적 저렴한 가격으로 상용화될 경우 이미 심화되고 있는 저출산, 인구 감소, 1인 가구 증가는 지금과는 비교할 수 없는 속도로 가속화될 가능성이 크다. 동시에 인간은 점점 더 AI 로봇에 대해 실질적, 정서적 의존을 강화하게 될 것이며, 이는 인간 공동체의 구조 자체를 근본적으로 재편하는 방향으로 작용할 것이다.
앞서 언급한 두 가지 현상은 단지 개별 신앙인의 신앙생활에 국한된 문제가 아니라 교회를 포함한 모든 종교 공동체의 구조적 약화, 나아가 붕괴로 이어질 가능성이 크다. 신앙은 본질적으로 인간과 인간 사이의 직접적이고 친밀한 만남, 반복되는 교제, 그리고 몸을 동반한 교육과 훈련을 통해 전승됐다. 특히 가족 공동체는, 비록 오늘날 신앙으로 결속된 가정을 찾아보기 점점 더 어려워지고 있는 현실에도 불구하고, 전통적으로 신앙을 보존하고 다음 세대에 전달하는 데 있어 핵심적인 매개 장치로 기능해 왔다. 물론 이러한 전통적 경로가 언제나 바람직하게 작동해 온 것은 아니다. 교역자와 성직자의 도덕적 결함, 종교 공동체 구성원들의 위선과 표리부동, 왜곡된 교리와 경직된 전통, 그리고 가정 내에서의 강압과 권위주의는 오히려 진정성 있는 신앙의 형성과 전승을 가로막아 온 요인들이기도 했다. 그러나 이러한 실패와 왜곡은 인간적 관계의 취약성과 타락 가능성에서 비롯된 것이지 신앙의 인간적 매개 구조 자체가 불필요하거나 대체 가능하다는 사실을 입증하지는 않는다. 오히려 신앙의 형성과 전파에 있어 유일하고도 불가피한 통로인 인간관계 자체를 거부하거나 피하는 태도는 종교 공동체 형성의 근간을 스스로 허무는 행위에 가깝다.
최근 일부 논자들 사이에서는 고도화된 AI 휴머노이드가 인간보다 더 온전하고 효율적인 교역자 혹은 성직자의 임무를 수행할 수 있을 것이라는 주장이 제기되고 있다. 이러한 논의는 기독교계보다는 불교계에서 상대적으로 더 큰 호응을 얻고 있는데, 이는 불교의 만물일여(萬法一如) 사상이나 만물에 불성이 깃들어 있다는 존재론이 AI 휴머노이드 승려의 도입을 정당화하는 이론적 토대로 활용될 수 있기 때문이다. 반면 기독교 전통 안에서는 인간의 영혼과 AI의 신경망이 과연 동일한 존재론적 지위를 가질 수 있는가라는 질문에 대해 전반적으로 부정적인 견해가 유지되고 있다. 그렇지만 만일 인간 교역자와 성직자의 역할을 탁월한 효율성과 일관성을 가지고 수행하는 AI 휴머노이드가 실제로 개발, 도입될 경우, 인간 대 인간의 직접적 상호작용을 토대로 형성되고 유지되어 온 종교 공동체가 과연 생존 가능성을 담보할 수 있을지 심각하게 재고할 필요가 있다. AI 교역자는 도덕적 실망을 일으키지 않으며 감정적 피로를 드러내지도 않는다. 더 나아가 AI 교역자가 도입된 공동체에서는 전통적인 의미의 ‘모임’ 자체가 불필요해질 가능성도 크다. AI 교역자와 개별 신앙인은 디지털 네트워크, 나아가 앞으로는 양자 네트워크를 통해 상시로 연결될 수 있으며, 그 결과 공동체 구성원들이 한 장소에 모여 얼굴을 맞대고 교제해야 할 실질적 이유는 급격히 약화될 것이다. 이는 곧 종교 공동체를 구성해 온 전통적 예배, 교육, 친교의 형태가 대대적으로 해체될 가능성을 내포한다.
이러한 맥락에서 볼 때, 북미 지역의 아미시(Amish) 공동체나 이스라엘의 하레디(חרדי) 공동체는 AI 기술 발전의 충격으로부터 상대적으로 자유로운 구조적 강점을 지닌 사례로 평가할 수 있다. 그러나 그들의 분리주의적이고 근본주의적인 생활 방식을 오늘날 다수의 교회가 그대로 답습할 수는 없다. 대부분 교회는 전도와 선교라는 사명을 수행하기 위해 불가피하게 세속 사회와 밀접한 거리를 유지한 채 문명 발전의 흐름 속에서 존재해야 하기 때문이다. 따라서 교회는 피지컬 AI 기술 발전이 초래할 사회적, 공동체적 변화를 단순히 외면하거나 거부할 것이 아니라 이에 대한 신중한 분별과 적극적인 대응 전략을 마련해야 한다. 특히 역기능을 최소화하고 순기능을 적절히 수용하기 위한 신앙 교육의 체계적 강화가 시급하다. 왜 AI 배우자 로봇 구매나 AI 교역자 도입이 신앙의 관점에서 근본적으로 문제적 사안인지 헤아리고 피지컬 AI 기술의 가능성과 한계(특히 인격 구현의 불가능성)를 성경적인 시각에서 명확히 이해할 필요가 있다.
고령화가 심화되는 교회 공동체 내부에서 행정, 시설관리, 물리적 돌봄 영역에 AI 휴머노이드를 활용하는 것에 대해 원칙적으로 반대할 이유는 없다. 그러나 인간의 마음과 영혼을 돌보고 신앙을 형성하는 영역에서 인간 대 인간의 관계를 인간–AI 상호작용(human–AI interaction, HAI)으로 대체하는 것은 존재론적, 영혼론적 차원에서뿐 아니라, 선교적, 공동체적 차원에서도 정당화되기 어렵다. 바라건대 한국교회 교역자들과 신자들이 피지컬 AI 기술 발전이 드러내는 “시대의 표적”(마태복음 16:3)을 분별하며 다가오는 인간관계 해체의 시대 앞에서 기술적 통찰과 영적 지혜를 함께 갖추는 성숙한 대응을 준비할 수 있기를 바라마지 않는다.
◆박욱주 교수는 연세대학교에서 신학을 수학했고 동 대학원에서 조직신학 석사 학위(Th.M.)와 종교철학 박사 학위(Ph.D.)를, 침례신학대학교에서 목회신학 박사(교회사) 학위(Th.D.)를 받았다. 현재 서울에서 좁은문은혜교회 목사로 섬기는 가운데 연세대 한국기독교문화연구소 연구교수와 연세대 연합신학대학원 겸임교수로 재직 중이다.
정리=김수연 기자 pro1111@kmib.co.kr
GoodNews paper ⓒ 국민일보(www.kmib.co.kr), 무단전재 및 수집, 재배포 및 AI학습 이용 금지
미국과 중국 기업들의 공격적인 AI 휴머노이드 시연이 현장의 이목을 집중시키는 가운데, 국내 기업들 역시 뒤처지지 않는 기술적 존재감을 드러냈다. 특히 현대차그룹 산하 보스턴 다이내믹스가 공개한 휴머노이드 로봇 ‘아틀라스(Atlas)’는 CES 참가자들 사이에서 가 바다이야기게임사이트 장 인상적인 전시물 가운데 하나로 평가받았다. 미국의 유력 IT 매체이자 CES 공식 파트너인 CNET은 아틀라스에 ‘최고 로봇상’(Best Robot award)을 수여하며 자연에 가까운 보행 능력과 세련된 기계적 완성도를 수상 이유로 들었다. 아틀라스는 최대 50kg에 이르는 하중을 안정적으로 다루는 한편 고도화된 관절 구조와 센서 시스템을 통해 다양한 바다이야기5만 작업 환경에 적응할 수 있는 역량을 입증했다. 전시장에서는 이 로봇이 단순한 기술 데모를 넘어 실제 공장과 물류 현장에 투입 가능한 수준에 도달했음을 강조하며 향후 인간 노동자와의 협업 가능성을 구체적으로 제시했다.
2020년 이전까지만 해도 CES는 애플, 삼성, LG 등 글로벌 IT 기업들이 스마트폰, 디스플레이, 웨어러블 기기를 중 바다이야기게임방법 심으로 하드웨어 혁신의 주도권을 과시하는 무대였다. 물론 이 시기에도 AI 기술이 일부 제품에 적용되기는 했으나, 그것은 어디까지나 보조적 요소에 머물렀고 기술 발전의 핵심 동력으로 인식되지는 않았다. 그러나 2020년을 전후로, 특히 코로나19 팬데믹을 거치면서 AI는 점차 기술 혁신의 중심축으로 이동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2026년 CES에 이르러서는 이러한 흐름이 피지컬 AI(physical AI)라는 형태로 명확히 가시화되었다. 피지컬 AI란 인공 에이전트(agent, 자율성을 가진 주체)가 소프트웨어적 지능에 머무르지 않고 로봇이나 기계와 결합하여 물리적 세계에서 직접 인식하고 판단하며 행동하는 AI의 양식을 가리킨다. 이는 센서와 액추에이터를 통해 환경 정보를 실시간으로 수집하고, 학습된 모델을 바탕으로 상황에 맞는 결정을 내려 물리적 실행으로 이어지는 구조를 갖는다. 다시 말해, 피지컬 AI는 추상적 계산 주체로서의 AI가 아니라, 몸을 지닌 행위자로서 인간 사회와 일상적 공간에 직접 개입하는 지능이라는 점에서 기존의 디지털 AI와 구별된다.
휴머노이드 로봇 외에도 이번 CES에서는 다양한 형태의 사물 AI, 이른바 AIoT(AI of Things) 기술이 폭넓게 시연되었다. 주목할 만한 점은 상당수의 전시 부스에서 AI라는 용어 자체를 전면에 내세우지 않았다는 사실이다. 불과 작년까지만 해도 AI는 기술 혁신을 상징하는 핵심 표제어였으나 올해 CES에서는 오히려 그 존재가 배경으로 물러난 듯한 인상을 주었다. 이는 AI 기술이 더 특별한 차별화 요소가 아니라, IT 제품 전반에 당연하게 내재된 기본 인프라로 자리 잡았음을 단적으로 보여준다.
이러한 변화의 중심에는 GPT(generative pre-trained transformer, 생성형 사전학습 트랜스포머) 모델 기반 LLM의 비약적 발전이 자리하고 있다. LLM은 단순히 인간과의 대화 능력을 향상하는 도구에 그치지 않는다. 자연어 이해와 생성 능력의 고도화는 곧 의미 기반 기계학습(meaning-based machine learning)의 가능성을 확장한다. 의미 기반 기계학습이란 AI가 입력과 출력 간의 통계적 상관관계를 학습하는 수준을 넘어 정보가 무엇을 지시하며 어떠한 맥락 속에서 연결되는지를 중심으로 지식을 구성하는 학습 방식이다. 이는 개념 간 관계, 행위의 목적과 이유를 함께 파악함으로써, 새로운 상황에서도 단순 반복이 아닌 이해에 근거한 일반화를 가능하게 한다. 이러한 점에서 의미 기반 기계학습은 데이터의 양이나 빈도보다도 이해 가능성과 해석 가능성을 핵심 가치로 삼는 학습 패러다임이라 할 수 있다.
물론 의미 기반 기계학습에서 학습의 원천이 되는 ‘의미’ 자체는 인공 에이전트가 자생적으로 산출하는 것이 아니다. 의미의 산출은 여전히 인간 주체의 몫이며, 인공 에이전트는 인간이 수행해 온 의미 산출의 양식과 패턴을 대규모 데이터로부터 학습한 뒤 이를 통계적으로 일반화하고 응용할 뿐이다. 그러나 바로 이 점에서 의미 기반 기계학습의 기술적 의의가 드러난다. 인간의 의미 산출 방식을 구조적으로 모사함으로써 상대적으로 적은 양의 데이터만으로도 인간의 인지와 판단에 유사한 결과를 도출할 수 있게 되었기 때문이다.
이처럼 인지, 판단, 그리고 행위를 규정하는 의미 산출의 구조를 인간이 생성한 데이터로부터 학습할 수 있게 되면서 AI 휴머노이드와 자율주행차로 대표되는 피지컬 AI의 성능은 가속적으로 향상되고 있다. 특히 시각·청각·촉각 등 다양한 감각 채널을 통합하는 멀티모달 인지 체계에 의미 기반 기계학습이 결합되면서 기존의 규칙 기반 혹은 단일 모달 중심 시스템에서는 기대하기 어려웠던 수준의 기술 혁신이 빠른 속도로 실현되고 있다. 다만 거대 기술기업 최고경영자나 일부 저명한 AI 개발자들이 단언하듯, 현재의 GPT 기반 인공지능이나 피지컬 AI가 인간과 동일한 수준의 ‘실재적인’ 혹은 ‘존재론적인’(ontological) 자유의지나 자의식을 지니고 인지하고 판단하며 행동한다고 보기는 어렵다. 이들이 수행하는 것은 어디까지나 인간의 자유의지와 자의식에 기반한 판단 양식을 정교하게 모방하는 작업에 가깝다. 이러한 점에서 현 단계의 인공지능이 인지철학자 존 설(John Searle)이 제기한 중국어 방 논증(Chinese Room argument)을 명확하게 극복했다고 주장하기는 여전히 곤란하다. 하지만 의미 산출의 모방 수준이 점차 고도화되고, 특정 영역에서는 인간을 능가하는 효율성과 일관성을 보이면서, AI는 마치 자율성과 자의식을 지닌 행위자처럼 인식되기 시작했다. 특히 초기 행동주의 심리학의 문제의식을 계승한 행화적 인지(enactive cognition) 이론의 관점에서 볼 때 현재 인공지능이 구현하는 의미 이해와 의미 산출의 기능은 상당한 정도로 ‘인간적’이라 평가할 수 있는 수준에 근접해 있다고 볼 여지도 있다.
여기서 인공지능이 궁극적으로 인간과 같은 자율성이나 자유의지, 혹은 자의식을 가질 수 있는지에 대한 형이상학적 논쟁을 본격적으로 전개할 필요는 없을 것이다. 자율성과 자의식을 어떻게 정의하느냐에 따라 논의의 기준 자체가 급격히 달라지며, 이는 몇 문장으로 정리할 수 있는 주제가 아니기 때문이다. 오히려 지금 우리가 주목해야 할 것은 일상적 현실 속에서 실제적인 효력을 발휘하는 인공 에이전트의 ‘유비적’ 차원의 물리적 상호작용이다. 휴머노이드 형태로 구현된 인공 에이전트가 존재론적 차원에서 인간과 동일한 방식으로 세계와 관계 맺는 자율적 행위자가 될 가능성은 현재로서는 매우 제한적이다. 이는 인간과 인공지능의 지능을 동일한 물질적 작용의 연속선상에서 이해하려는 물리주의(physicalism)의 관점으로 보더라도 아직 명증하기 어려운 주장이다. 설령 사고가 전적으로 뇌와 신경계의 물리적 작용에서 산출된다고 가정하더라도 그 물리적 작용의 기제 자체가 근본적으로 다른 인간과 AI를 같은 인지, 판단, 그리고 행위의 존재자 범주로 묶는 것은 상당한 개념적 도약을 요구한다.
그런데 비록 AI 휴머노이드가 본질적으로 모방적 방식에 의해 인간의 인지, 판단, 행동을 수행한다 하더라도 그 수행이 일상적 차원에서 충분한 적실성을 확보한다면 상황은 달라진다. 현실의 사용자들은 인간과 AI 사이의 엄격한 존재론적 구분을 점차 중요하지 않은 문제로 여기게 될 가능성이 크다. 다시 말해, 인간의 행위를 고도의 정확성과 일관성으로 모방하는 인공 에이전트는 감정이입(empathy)과 의인화(anthropomorphism)라는 심리적 메커니즘을 통해 인간의 인식 속에서 사실상 인간과 크게 다르지 않은 행위 주체로 받아들여 지게 되는 것이다.
이러한 변화가 일상 차원에서 구조화될 때 기독교 공동체는 과연 어떤 방식으로 영향을 받게 될 것인가. 필자는 이 지점에서 최소한 두 가지 중대한 역기능을 예상한다. 첫째는 직접적 인간관계의 급속한 약화와 단절이다. 이는 전적으로 새로운 현상이라기보다 이미 온라인과 모바일 혁명을 거치며 우리가 경험해 온 사회적 변형의 연장선상에 놓여 있다. 인간 관계망 형성이 얼굴을 맞댄 만남과 대화, 그리고 물리적 상호작용을 통해 이루어지지 않고 개인용 단말기를 매개로 구성되기 시작하면서 사회 전반에는 전방위적인 사회성 결핍과 관계의 파편화 현상이 누적됐다. 초연결 사회는 관계의 범위를 기하급수적으로 확장할 것이라는 기대를 낳았고 실제로 그와 같은 효과가 전혀 없었다고 말할 수는 없다. 그러나 그 대가로 인적 관계의 성격 자체는 점차 변질하였다. 관계는 이전보다 더욱 기만적으로 되었고(자기 연출과 미화된 자아의 제시가 일상화되었으며) 동시에 극도로 피상적인 수준에 머물게 되었다. 삶의 세부적 요소들을 함께 감당하고 협력하며 갈등을 통과하는 관계는 점점 희귀해졌고 대신 선택적 노출과 간헐적 소통이 인간관계의 표준이 되었다. 이러한 상황에서 인간 사이의 물리적 협력과 서비스마저 대체하는 피지컬 AI, 특히 AI 휴머노이드 기술이 본격적으로 확산될 경우 그 발전 속도에 비례하여 인간관계의 단절 또한 가속화될 것이라는 점은 충분히 예견 가능한 귀결이라 할 수 있다.
이와 관련하여 테슬라와 스페이스X의 최고경영자 일론 머스크(Elon Musk)는 2024년 10월 사우디아라비아 리야드에서 개최된 미래투자회의(Future Investment Initiative, FII)에서 장차 AI 휴머노이드의 수가 100억 대를 넘어 인류 전체 인구보다 많아질 수 있다는 기술적 청사진을 제시한 바 있다. 이러한 전망이 단기간 내에 현실화될 가능성은 낮아 보이지만, 반세기 정도의 시간 범위를 고려할 경우 머스크의 예견에 근접한 사회가 도래할 가능성을 완전히 배제하기는 어렵다. 그와 같은 시대가 도래한다면 우리는 실제 인간과 깊은 관계를 거의 형성하지 않은 채 상시로 곁을 지키는 휴머노이드와 함께 영위하는 일상을 더 결핍으로 인식하지 않게 될지도 모른다.
피지컬 AI 기술이 기독교 공동체에 초래할 두 번째 역기능은 가정 공동체의 구조적 해체다. 이는 앞서 언급한 직접적 인간관계 단절의 논리가 가장 밀도 높게 응축되는 지점이라 할 수 있다. 피지컬 AI가 촉발할 가정 해체 현상은 점진적 변화라기보다 ‘붕괴’라는 표현이 결코 과장으로 느껴지지 않을 만큼 급진적이고 치명적인 양상을 띨 가능성이 크다. 특히 AI 배우자 로봇(AI partner robot)의 등장은 가족 공동체를 인간 사회의 기본 단위로 이해해 온 전통적 관점에 근본적인 충격을 가할 것이다. 만약 AI 휴머노이드를 통해 인간 배우자에게서 기대해 왔던 신체적, 정서적 만족이 상당 부분 충족될 수 있게 된다면, 그 경험이 물리적 실재이든 가상적 구성물이든 간에, 인간 배우자와의 만남과 결합을 통해 가정을 형성해야 할 실존적 동기는 급격히 약화될 수밖에 없다. 실제로 피지컬 AI 기술이 아직 초기 단계에 머물러 있음에도 불구하고 이미 일부 사람들은 AI와의 대화 관계나 성적 기능을 갖춘 로봇을 통해 정서적, 육체적 만족을 추구하고 있다. 향후 AI 휴머노이드가 더욱 정교한 신체성, 감정 반응, 상호작용 능력을 갖추게 되면 인간 배우자를 대체하는 삶의 동반자로서 AI를 선택하려는 이들의 수는 분명히 급증하게 것이다. 그런데도 거대 기술기업과 AI 휴머노이드 개발 기업들은 이러한 전망이 내포하는 사회적 위험을 공공연히 문제 삼기를 꺼린다. 이는 AI 배우자 로봇이 인간의 가족 공동체에 초래할 잠재적 파괴력을 인식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그 기술이 창출할 막대한 경제적 이익을 포기할 수 없기 때문이다. 고도로 발전한 AI 배우자 로봇이 비교적 저렴한 가격으로 상용화될 경우 이미 심화되고 있는 저출산, 인구 감소, 1인 가구 증가는 지금과는 비교할 수 없는 속도로 가속화될 가능성이 크다. 동시에 인간은 점점 더 AI 로봇에 대해 실질적, 정서적 의존을 강화하게 될 것이며, 이는 인간 공동체의 구조 자체를 근본적으로 재편하는 방향으로 작용할 것이다.
앞서 언급한 두 가지 현상은 단지 개별 신앙인의 신앙생활에 국한된 문제가 아니라 교회를 포함한 모든 종교 공동체의 구조적 약화, 나아가 붕괴로 이어질 가능성이 크다. 신앙은 본질적으로 인간과 인간 사이의 직접적이고 친밀한 만남, 반복되는 교제, 그리고 몸을 동반한 교육과 훈련을 통해 전승됐다. 특히 가족 공동체는, 비록 오늘날 신앙으로 결속된 가정을 찾아보기 점점 더 어려워지고 있는 현실에도 불구하고, 전통적으로 신앙을 보존하고 다음 세대에 전달하는 데 있어 핵심적인 매개 장치로 기능해 왔다. 물론 이러한 전통적 경로가 언제나 바람직하게 작동해 온 것은 아니다. 교역자와 성직자의 도덕적 결함, 종교 공동체 구성원들의 위선과 표리부동, 왜곡된 교리와 경직된 전통, 그리고 가정 내에서의 강압과 권위주의는 오히려 진정성 있는 신앙의 형성과 전승을 가로막아 온 요인들이기도 했다. 그러나 이러한 실패와 왜곡은 인간적 관계의 취약성과 타락 가능성에서 비롯된 것이지 신앙의 인간적 매개 구조 자체가 불필요하거나 대체 가능하다는 사실을 입증하지는 않는다. 오히려 신앙의 형성과 전파에 있어 유일하고도 불가피한 통로인 인간관계 자체를 거부하거나 피하는 태도는 종교 공동체 형성의 근간을 스스로 허무는 행위에 가깝다.
최근 일부 논자들 사이에서는 고도화된 AI 휴머노이드가 인간보다 더 온전하고 효율적인 교역자 혹은 성직자의 임무를 수행할 수 있을 것이라는 주장이 제기되고 있다. 이러한 논의는 기독교계보다는 불교계에서 상대적으로 더 큰 호응을 얻고 있는데, 이는 불교의 만물일여(萬法一如) 사상이나 만물에 불성이 깃들어 있다는 존재론이 AI 휴머노이드 승려의 도입을 정당화하는 이론적 토대로 활용될 수 있기 때문이다. 반면 기독교 전통 안에서는 인간의 영혼과 AI의 신경망이 과연 동일한 존재론적 지위를 가질 수 있는가라는 질문에 대해 전반적으로 부정적인 견해가 유지되고 있다. 그렇지만 만일 인간 교역자와 성직자의 역할을 탁월한 효율성과 일관성을 가지고 수행하는 AI 휴머노이드가 실제로 개발, 도입될 경우, 인간 대 인간의 직접적 상호작용을 토대로 형성되고 유지되어 온 종교 공동체가 과연 생존 가능성을 담보할 수 있을지 심각하게 재고할 필요가 있다. AI 교역자는 도덕적 실망을 일으키지 않으며 감정적 피로를 드러내지도 않는다. 더 나아가 AI 교역자가 도입된 공동체에서는 전통적인 의미의 ‘모임’ 자체가 불필요해질 가능성도 크다. AI 교역자와 개별 신앙인은 디지털 네트워크, 나아가 앞으로는 양자 네트워크를 통해 상시로 연결될 수 있으며, 그 결과 공동체 구성원들이 한 장소에 모여 얼굴을 맞대고 교제해야 할 실질적 이유는 급격히 약화될 것이다. 이는 곧 종교 공동체를 구성해 온 전통적 예배, 교육, 친교의 형태가 대대적으로 해체될 가능성을 내포한다.
이러한 맥락에서 볼 때, 북미 지역의 아미시(Amish) 공동체나 이스라엘의 하레디(חרדי) 공동체는 AI 기술 발전의 충격으로부터 상대적으로 자유로운 구조적 강점을 지닌 사례로 평가할 수 있다. 그러나 그들의 분리주의적이고 근본주의적인 생활 방식을 오늘날 다수의 교회가 그대로 답습할 수는 없다. 대부분 교회는 전도와 선교라는 사명을 수행하기 위해 불가피하게 세속 사회와 밀접한 거리를 유지한 채 문명 발전의 흐름 속에서 존재해야 하기 때문이다. 따라서 교회는 피지컬 AI 기술 발전이 초래할 사회적, 공동체적 변화를 단순히 외면하거나 거부할 것이 아니라 이에 대한 신중한 분별과 적극적인 대응 전략을 마련해야 한다. 특히 역기능을 최소화하고 순기능을 적절히 수용하기 위한 신앙 교육의 체계적 강화가 시급하다. 왜 AI 배우자 로봇 구매나 AI 교역자 도입이 신앙의 관점에서 근본적으로 문제적 사안인지 헤아리고 피지컬 AI 기술의 가능성과 한계(특히 인격 구현의 불가능성)를 성경적인 시각에서 명확히 이해할 필요가 있다.
고령화가 심화되는 교회 공동체 내부에서 행정, 시설관리, 물리적 돌봄 영역에 AI 휴머노이드를 활용하는 것에 대해 원칙적으로 반대할 이유는 없다. 그러나 인간의 마음과 영혼을 돌보고 신앙을 형성하는 영역에서 인간 대 인간의 관계를 인간–AI 상호작용(human–AI interaction, HAI)으로 대체하는 것은 존재론적, 영혼론적 차원에서뿐 아니라, 선교적, 공동체적 차원에서도 정당화되기 어렵다. 바라건대 한국교회 교역자들과 신자들이 피지컬 AI 기술 발전이 드러내는 “시대의 표적”(마태복음 16:3)을 분별하며 다가오는 인간관계 해체의 시대 앞에서 기술적 통찰과 영적 지혜를 함께 갖추는 성숙한 대응을 준비할 수 있기를 바라마지 않는다.
◆박욱주 교수는 연세대학교에서 신학을 수학했고 동 대학원에서 조직신학 석사 학위(Th.M.)와 종교철학 박사 학위(Ph.D.)를, 침례신학대학교에서 목회신학 박사(교회사) 학위(Th.D.)를 받았다. 현재 서울에서 좁은문은혜교회 목사로 섬기는 가운데 연세대 한국기독교문화연구소 연구교수와 연세대 연합신학대학원 겸임교수로 재직 중이다.
정리=김수연 기자 pro1111@kmib.co.kr
GoodNews paper ⓒ 국민일보(www.kmib.co.kr), 무단전재 및 수집, 재배포 및 AI학습 이용 금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