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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언의 난 훌쩍. 빠져. 전부 다시 듯한‘자전 소설’을 특장으로 2022년 노벨 문학상을 받은 프랑스 작가 아니 에르노(85, 왼쪽)와 자신이 직접 겪은 차별, 폭력을 소설로 적나라하고 섬세하게 드러내며 주목을 받은 에두아르 루이(33). 위키미디어 코먼스


내가 자란 곳은 시장이었다. 여자들은 바닥에 앉아서 물건을 팔았고, 남자들은 대체로 부재했다. 아이들은 어른들의 눈길이 닿지 않는 골목에서 위험한 불장난을 하며 놀았다. 그들은 스스로 자라는 법을 일찍 배워야 했다. 밤이면 어느 집에서 싸우는 소리가 들려왔다. “이 지긋지긋한 동네, 다시는 안 와.” 그렇게 말하고 어김없이 되돌아오던 사람들. 나 역시 그들만큼 그곳을 떠나고 싶었다. 나의 의지와 상관없이 얻게 된 것들을 버리고 싶었다. 수협 적금 자란 곳을 떠나 서울로, 다시 파리로 갔다. 공부는 핑계였고, 사실은 완전히 낯선 환경 속에서 다른 내가 되어보고 싶었다.
파리의 대학에서 자기 경험을 솔직하게 쓰는 작가들의 작품을 만났다. ‘자전적 소설’이라 불리는 그 이야기들은 대체로 떠나온 세계와 새로 진입한 세계, 그 둘 사이의 경계에 서 있는 사람들의 것이었다. 자란 곳을 떠나 중고차 캐피탈 이자 먼 곳으로 왔지만, 여전히 어디에서도 완전히 속하지 못한다고 느꼈던 나는 그 소설들을 읽고 내 욕망과 감정을 이해할 수 있게 됐다. 내가 꿈꿨던 탈출이 단순한 이주가 아니라 자아를 새로 쓰고자 하는 욕구라는 것도. 나는 그렇게 ‘계급 횡단자’라고 불리는 이들의 문학에 단숨에 매료됐다.
‘계급 횡단자’는 프랑스 사회학자인 피에르 부르디외의 주택구입시 세금 계급 이론에서 파생된 개념으로, 하층 계급 출신 인물이 상류 문화권, 특히 지식인 계급에 진입한 이후 겪는 존재적 문화적 상태를 가리킨다(이전까지는 ‘계급 전향자’, ‘계급 탈주자’라는 용어를 주로 썼으나, 철학자 샹탈 자케가 ‘전향자’라는 말 안에 담긴 가치 평가와 편견을 걷어내고, 계급 이동 방식에 대한 가치 중립적 접근을 시도하는 ‘횡단자’ 개념을 카드대납 새롭게 고안해냈다). 이 개념은 단순히 계급 이동의 사실이나 경로가 아니라, 떠나온 세계와 새로 진입한 세계 사이 경계에 놓이는 위치, 서로 다른 습성(habitus)이 충돌하며 생기는 불화, 양쪽 세계에 모두 완전히 속하지 못하는 이방인 감각, 그로 인한 정체성 재구성과 사회·문화적 긴장에 주목한다. 부르디외에 따르면, 계급은 소득의 차이뿐 아니라, 말투 영세민전세자금대출연장 , 취향, 삶의 방식, 사고방식 같은 습성의 차이를 만든다. 하층 출신이 고등교육으로 상류 문화에 들어서면, 이전에 몸에 밴 습성과 새로운 규범 사이에서 끊임없이 부딪히게 된다. 계급 횡단자는 바로 이 경계에서 자기 자신을 분석하고, 과거와 현재의 세계를 해석하는 주체다. 대표적인 예로 2022년 노벨 문학상을 받은 아니 에르노가 있다.
에르노의 문학은 계급을 넘어선 자가 겪는 수치심에서 비롯된다. 그녀는 떠나온 세계를 부끄러워했고, 그런 자신을 다시 부끄러워했다. 이 복합적인 감정을 출발점으로 삼아, 그것이 형성된 사회적·역사적 맥락을 분석하는 것이 아니 에르노의 글쓰기다. 개인의 경험을 사적인 고백에 머물게 하지 않고, 그것이 발생한 시대와 계급, 조건을 살피는 것이다. 그래서 에르노의 문학은 탈출이 아니라 돌아가기를 시도한다. 단순한 회상이 아닌, 떠나온 세계의 목소리와 시선을 문학 속에 되살려 집단의 역사와 맞닿게 하는 것, 그것이 아니 에르노가 자아를 다시 쓰는 방식이다.
한편, 돌아가기 대신 단절을 택하는 계급 횡단자도 있다. 자신이 속했던 세계를 폭력의 장소로 규정하고, 그곳을 고발하며, 부여된 이름을 지우는 것으로 문학을 시작한 사람. 등장과 동시에 문학적 논란과 정치적 파장을 불러일으킨 작가, 에두아르 루이다.
그의 첫 소설 ‘에디의 끝’은 프랑스 북부 피카르디의 작은 마을을 배경으로 한다. 높은 실업률과 극우 정당에 대한 정치적 지지, 가부장적 규범이 지배하는 곳에서 자란 주인공, 에디는 여성스러운 말투와 몸짓, 성소수자라는 정체성 때문에 매일 조롱과 폭력에 시달린다. 그곳에서 반복되는 폭력은 과시적 남성성의 상징이었고, 그 표적이 바로 에디였으며, 에디는 곧 작가 에두아르 루이 자신이다.
에두아르 루이는 한 인터뷰에서 폭력을 문학적 공간으로 만들고 싶다고 말했다. 폭력을 단순히 재현하는 것이 아니라, 다층적 시간 구성, 인물의 내면 탐색, 비유, 상징, 반복 등 문학적 기법을 통해 분석과 사유의 장에 올려놓겠다는 뜻이다. 폭력이 문학의 장으로 들어오는 순간, 가해자와 피해자가 공유하던 은밀한 비밀은 깨진다. 침묵을 강요하던 힘이 말 한마디에 무너지는 것, 바로 거기에 문학의 정치성이 있다. 에두아르 루이는 자기가 속했던 세계의 민낯을 드러내며, 기꺼이 내부 고발자가 되기를 자처한다. 그에게 글쓰기는 정치적 과정이기 때문이다. 루이는 문학이 사회의 부당한 구조를 폭로하고, 공론장의 일부가 되어야 한다고 믿는다.
‘에디의 끝’의 원제는 ‘에디 벨괼과 끝내기’이며, 에디 벨괼은 에두아르 루이의 본명이다. 작가가 끝낸 것은 과거의 이름만은 아닐 것이다. 그는 폭력이 한 사람을 규정하는 방식, 계급이 부여한 운명론, 내면화된 수치심을 키운 세계와 결별하기 위해 이 소설을 썼다. 그래서 그가 옛 이름을 버리고 새로운 이름으로 자신을 부를 때, 우리는 존재를 건 싸움 앞에서 문학이 얼마나 유효한 무기가 될 수 있는지를 체감한다.
떠나는 자, 돌아가는 자, 단절하는 자, 남아 있는 자. 자신이 속한 세계와의 불화를 개인의 문제로만 보지 않고, 구조적 맥락을 탐구하는 이 계급 횡단자들은 경험을 언어화하며 자신과 세계의 관계를 새롭게 쓴다. 떠남은 다른 언어를 찾기 위해, 돌아감은 복원을 위해, 단절은 부당함을 끊기 위해, 남음은 변화의 가능성을 찾기 위해. 문학은 이들의 서사를 한데 모으고, 그들의 이야기는 그 안에서 독특한 지형을 이룬다. 어쩌면 이것이야말로 계급 횡단자들의 문학적 공간이라 부를 수 있지 않을까? 그곳에서 우리는 타인의 서사에서 자기 자신을 발견하고, 사회와 역사적 맥락 속에서 자신의 경험을 새롭게 써 내려갈 수 있을 것이다.



신유진 작가


신유진 작가·번역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