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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을 걷는 사람에게는 저마다의 사연이 있다. 제주올레 이사장 서명숙이 만난 사람들을 통해 길이 품고 있는 소중한 가치와 치유의 의미를 되새겨 본다. 이 글은 사단법인 제주올레 서명숙 이사장이 '서명숙의 놀멍 쉬멍 걸으멍 - 길 위에서 전하는 편지'라는 이름으로 제주올레 공식 블로그에 연재 중이다. [헤드라인제주]는 길 위에서 길어 올린 이야기들을 나누고 모두가 길 위에서 행복하기를 바라는 그녀의 소망을 '서명숙의 로드 다큐멘터리' 타이틀을 통해 독자들에게 소개한다. <편집자주>
- 다시 쓰는 올레길 편지
참으로 오랜 마음속 멍울이자 숙제였다. 19년간 연락이 두절된 릴게임사이트추천 그녀를 찾아내는 일. 직접 만난 건 아니지만 다시 연결된 것은 지난 10월 하순, 올레축제 며칠 전이었다. 그 소식을 듣자마자 천장까지 폴짝 뛸 만큼 흥분했다. 지독한 독감으로 목소리까지 잠긴 상황에서도 소리 없는 아우성을 내질렀다.
그녀를 찾아낸 뒤로 또 다른 숙제가 생겼다. 이 소식을 내 책 <놀멍 쉬멍 걸으멍> 독자들과 그녀를 아는 야마토릴게임 올레꾼들에게 전해야 한다는 것. 감기 기운에 미뤄두다가, 올해가 가기 전에 노트북을 펼쳤다. 이제 이야기를 시작해 보련다.
# 너무나 죽이 맞았던 산티아고 길동무, 헤니와 나
눈치 빠른 올레꾼이라면 내가 찾은 '그녀'가 누구인지 짐작했을 것이다. 그렇다. 각자의 나라로 돌아가 각자 길을 내자며 나를 부추겼던 '영국 여자 바다이야기5만 헤니'다.
우리가 카미노 데 산티아고에서 만난 일은 지금 와서 생각해보면 운명에 가까운 일이었다. 내가 그녀를 만난 것은 산티아고 순례길 여정 중 가장 혹독하고 무서운 하룻밤을 보낸 다음날이었다. 노을 질 무렵 알베르게가 있는 마을에 겨우 도착했지만 침대는 이미 다 찼다. 헛간이라도, 어디서든 재워달라 했지만 거절. "2km만 더 가면 손오공릴게임 다른 알베르게가 있다"는 말이 유일한 친절이었다.
한 발도 떼기 힘든데 2km라니. 눈물이 터져나올 것 같았지만 겨우 발길을 떼어놓았다. 오르막 산길 같은 곳으로 접어들면서 날은 순식간에 어두워졌다. 그때 멀리서 무언가가 달려오는 느낌이 들었다. 덩치 큰 개가 한 마리도 아닌 서너 마리였다. 개들의 공격을 자극하면 어쩌나 겁이 나서 한 발 바다이야기게임2 자국도 움직이지 못한 채 한국말로 외쳤다. "누가 저 개들 좀 잡아달라고요!"
하늘은 무심하지 않았다. 고갯마루에 나타난 누군가가 휘파람을 불자 개들은 그에게 달려갔다. 알고 보니 그는 알베르게 운영자였고 개들은 그의 식구였다. 원망과 고마움이 교차하는 가운데 침대를 배정받자 그제야 살았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곳은 산중 알베르게라 거의 나 혼자였다. 마을 이름은 카사노바. 잊을 수 없는 이름!
# 카사노바 카페에서 만나 멜리데에서 뿔뽀를 먹다
다음날 새벽, 전날 저녁도 못 먹고 잠든 터라 배가 고팠다. 동네 카페에 아침을 먹으러 들어갔다. 카페의 아침은 행복 그 자체였다. 한 끼를 굶은 뒤 먹게 된 스페인식 계란 감자 오믈렛의 맛과 카페 콘 라체(스페인식 밀크커피)의 맛은 황홀할 정도였다.
사진=(사)제주올레
내가 너무 행복해 보여서였을까. 맞은편 테이블에 앉아 있던 여자가 인사를 건넸다. 그녀가 바로 헤니였다. 헤니는 영국에서 왔고 오늘로 32일째 걷는다고 했다. 나는 33일째. 하루 차이로 시작한 우리가 카사노바에서 속도가 맞아떨어진 것이다. 우리는 짧은 대화를 나누고 그녀가 먼저 떠났다. "부엔 까미노!" 길 위의 만남과 헤어짐은 늘 쿨하다.
그런데 얼마 못 가 길가 큰 나무 그늘 아래 늘어지게 쉬는 여자가 보였다. 헤니였다. 그 모습을 보자 숙제하듯 걷는 내가 부끄러워졌다. 나도 옆에 철퍼덕 앉아 한참을 멍 때렸다. 그리고 수다를 나누던 끝에 우리 둘 다 다음 마을 멜리데에서 뿔뽀를 먹고 싶다는 소망이 같다는 걸 확인했다. 헤니는 맛집 정보도 갖고 있었다. 그녀를 따라가기로 했다.
뿔뽀는 기대 이상이었다. 토속 맛집 분위기 속 올리브오일과 스페인식 고추로 맛을 낸 문어는 놀랄 만큼 부드러웠다. 물 대신 선택 가능한 '비노 블랑코(화이트 와인)'를 곁들여서 우리는 한껏 여유로워져서 산티아고 수다를 떨기 시작했다. 왜 직장을 그만뒀는지, 무엇을 버리고 얻었는지, 좋았던 순간과 힘들었던 순간은 언제였는지.....
우리는 둘 다 40대 후반~50대 초반, 20년 넘게 하던 일을 내려놓고 이 길을 택한 중년 여성이라는 점에서 통하는 게 많았다. 이 길 위에서 깨달은 점, 얻게 된 변화도 너무나 비슷해서 놀라울 정도였다. 국적도 다르고, 직업도 다른데도 불구하고. 우리의 공통된 결론도 있었다. "길은 행복한 종합병원"이라는 것. 걷다 보면 다리에 근육이 생기고 지방이 빠져나가듯이 정신에도 근육이 생기고 지방은 빠져나가서 몸과 마음이 절로 치유가 된다는 것이 우리 둘 다 한 달이 넘는 강행군 끝에 내린 결론이었다.
대화는 '산티아고 이후'로 이어졌다. 헤니는 귀국하면 고향 해안가 마을에 길을 내겠다고 했다. "왜 이런 길이 스페인에만 있어야 하느냐. 각 나라, 각 마을에 이런 길이 있어야 한다"는 주장이었다. 나는 속으로 허걱했다. 나도 제주에 이런 길이 있으면 좋겠다고 생각은 했지만, 누군가 해주길 바랐지 내가 할 생각은 없었다. 귀국하면 제주도 언론에 이런 내용으로 글을 써서 기고해야겠다고 마음먹은 게 고작이었다. '아, 그런데 이런 일을 자신이 직접 하겠노라고 마음먹는 사람도 다 있구나.' 입을 떡 벌리고 있는 나에게 헤니는 강력하게 제안해왔다. "당신도 고향에 길을 내라. 한국에서, 나는 영국에서. 나중에 서로 길을 교류하자."
그녀의 열정적인 설득은 산티아고 길을 걷는 내내 어린 시절 걸었던 제주 서귀포의 바닷가, 오름 풍경을 떠올리며 그리워하던 나, 2000년대 접어들어 해외여행 붐이 일면서 싸구려 바가지 관광지 취급을 받는 고향 제주를 안타까워하며 발을 동동 구르던 나, 산티아고길에서 제주를 되살리고 그 순정한 매력을 제대로 보여줄 수 있는 강력한 해법 하나를 발견하고 이걸 어떻게 제주 사회에 알리고 설득할까 고민하던 나에게 기름을 붓는 역할을 했다. 나는 결국 불타올랐다. '그래, 내가 고향에 돌아가 직접 길을 내자. 이 영국 여자도 그런다잖아.'
나는 나도 모르게 그녀를 향해 고개를 끄덕였다. 우리는 꼭 다시 만나자며 연락처를 주고받았다. 그녀는 런던의 기차역에서 연락하면 마중 나오겠노라며 집주소와 연락처, 메일 주소까지 적어주었다. 물건을 잘 잃어버리는 나는 그 종이를 꽁꽁 숨겨뒀다. 영영 못 찾게 될 줄도 모르고.
사진=(사)제주올레
그 뒤 스페인에서 귀국해 제주로 귀향한 나는 동생과 탐사대원들과 길을 찾고, 잇고, 열었다. 그리고 자원봉사자들과 함께 18년 동안 그 길을 지키며 살았다. 그 시간 내내 나는 헤니를 잊지 않았다. 힘들 때도, 벅찬 보람을 느낄 때도 마음속으로 묻곤 했다. "당신도 이렇게 힘든가요, 이렇게 벅찬 보람과 환희를 느끼나요?"
하지만 그녀에게 직접 물을 수는 없었다. 주소를 적어둔 종이가 아무리 뒤져도 나오지 않았기 때문이다. 나는 외국인을 만날 때마다 헤니 이야기를 하며 그녀를 찾아달라고 부탁했다. 세계 트레일 컨퍼런스에서도, 아시아 트레일 컨퍼런스에서도, 길에서 만난 외국인 올레꾼들에게도. 그러나 그 어느 곳에서도 헤니의 소식은 들려오지 않은 채 그렇게 세월만 흘러갔다.
# '미싱 헤니 프로젝트'와 AI가 찾아낸 기적
헤니 찾기를 다시 떠올린 것은 2024년 9월 말 축제를 앞두고 미국 출신 올레꾼 크리스티나를 만나면서였다. 유엔에서 영양사로 일하며 식량 원조가 필요한 여러 나라를 다닌 전문직 여성 크리스티나는 한국인 직원 소피아의 추천으로 제주올레를 걸으러 왔다고 했다. 제주올레여행자센터에서 우연히 만난 그녀와 7코스를 함께 걷다 나는 또다시 헤니 이야기를 꺼냈다. 아, 이 친구 반응은 기대 이상이었다. 눈을 반짝이며 깊은 흥미를 보였던 크리스티나는 한 달여 뒤 제주를 떠나며 자발적으로 약속했다. 당장 오늘부터라도 '미싱 헤니 프로젝트팀'을 꾸려 그녀를 꼭 찾아보겠노라고. 유엔 동료 소피아와, 올레에서 만난 이탈리아 여성 마르게르따도 팀원으로 끌어들이겠다고. 나는 뛸 듯이 기뻤다.
그 뒤로 미싱 헤니 프로젝트 팀은 유럽 사람 찾기 사이트, 트레일 관련 밴드와 SNS에 사연을 올리며 헤니를 찾기 위해 노력했다. 뜻밖의 조력자도 나타났다. 한국에서 태어나 미국에서 살다 은퇴 후 산티아고길 자원봉사를 한다는 여성 안느였다. 안느는 영국인 순례자들이 많이 쓰는 밴드와 사이트를 알려주며 사연을 올려보라고 조언했고, 프로젝트의 다섯 번째 팀원이 되었다.
그렇지만 한 달여 기간이 흐르도록 별 소득은 없었다. 크리스티나가 산티아고 길 프랑스 구간 시작점인 생 장 피에드포르 산티아고협회를 찾아 오래된 기록을 확인하려 했으나, 그런 기록은 없거나 개인정보가 남아 있지 않다는 답만 돌아왔을 뿐이다. 모두가 풀이 죽어갈 즈음, 팀내 탐정으로 통하던 소피아가 새로운 제안을 던졌다. 내게 남아 있던 유일한 단서인 헤니의 사진을 AI에게 보여주고 찾아달라 해보자는 것이었다. 하지만 해상도도 낮고 20여 년 전 사진이라 기대가 크지 않았다. '아무리 AI라 해도 긴 세월과 드넓은 공간을 건너뛰어 과연 그녀를 찾아낼 수 있겠어?'. 나로선 상상이 안 가는 일이었다.
사진=(사)제주올레
그런데 소피아가 얼마 뒤 사진 두 장을 보내왔다. 스페인 안달루시아 지방의 작은 잡지에 실린 인물 두 명의 사진이었다. 한 사람은 영국 이름, 다른 한 사람은 스페인 이름인 듯했다. 이에 소피아가 직접 이메일로 연락해 확인해보기로 했다. 놀랍게도 AI가 찾아낸 두 여성은 동일 인물이었다. 영국 이름과 스페인 이름이 달랐을 뿐이다. 그 이유도 밝혀졌다. 그녀는 오래전 영국이 아니라 스페인으로 이주해 안달루시아에 살고 있었다. 그녀의 본명은 잔느 캐서린 헤니. 내가 기억한 헤니는 이름이 아니라 성이었던 것이다.
극적인 사람 찾기에 성공한 이후 잔느는 소피아의 안내로 우리 밴드에 가입했고, 그 뒤 많은 이야기를 나눌 수 있었다. 잔느는 무엇보다 내가 한국으로 귀국한 뒤에 실제로 길을 냈다는 사실에 감동받았다면서, 내가 아직도 자기를 기억하면서 자기를 찾고 있다는 사실에 놀라움을 금치 못했다. 그녀는 나와 다시 연락이 이어지고 하룻밤 사이 제주올레에 대한 인터넷 자료를 다 뒤져본 끝에, 내가 이토록 유명한 길을 냈다는 사실에 더더욱 감동을 받았다면서 그 길을 꼭 와서 걸어보고 싶다는 희망을 열렬히 피력했다.
나는 물었다. "당신은 길을 냈나요? 그 길을 지키느라 나처럼 개고생을 했나요?" 잔느는 대답했다. 직접 길을 내진 못했지만 또 다른 길을 걸었노라고. 트레일의 나라답게 영국에는 이미 너무 많은 길이 나 있었기에 그녀는 길 내기를 포기했고, 대신 환경을 지키기 위해 영국의 소수파 환경정당에 들어가 열심히 활동했다고 한다. 그런데 어느 날 노후에 살고 싶어 자그마한 땅을 사둔 안달루시아 산중 마을에 대규모 개발이 추진된다는 소식이 들려왔다. 이에 당장 스페인으로 가서 현지에서 환경정당을 만들어 난개발 반대 운동을 해왔다고 했다. 그것 또한 자기에게는 '길'이었다는 것이다.
이 긴 글을 마무리지어야 할 때가 되었다. 여러분 기대하시라, 2026년 새해 제주올레 자원봉사자들에게 한 해 수고하셨다고 감사를 전하고 유공자들에게 상을 수여하는 '2026 다시 봄, 제주올레'(땡큐파티) 즈음에 그녀와 그녀의 친구가 보름 동안 제주를 방문하기로 했으니. 파티에도 참석하겠지만, 그녀는 그녀의 길동무가 그녀의 제안을 받고 마음을 내서 만들기 시작한 그 길을 걷고 싶어하니, 올레길도 몇 군데 걸을 것이다. 73세의 나이라서 빡세게 완주는 못해도 놀멍 쉬멍 걸으멍 멍 때리면서 제주의 바다와 오름과 구름과 마을과 해녀 그리고 제주 음식을 한껏 즐기고 보고 만나고 맛볼 생각에 그녀는 벌써부터 설레고 있단다. 그 길에서 헤니, 아니 잔느를 만나면 활짝 미소를 건네주시길. 감사하다고 말해주시길. 그녀가 없었더라면 제주올레 길은 없었을지도 모를 일이니.
- 다시 쓰는 올레길 편지
참으로 오랜 마음속 멍울이자 숙제였다. 19년간 연락이 두절된 릴게임사이트추천 그녀를 찾아내는 일. 직접 만난 건 아니지만 다시 연결된 것은 지난 10월 하순, 올레축제 며칠 전이었다. 그 소식을 듣자마자 천장까지 폴짝 뛸 만큼 흥분했다. 지독한 독감으로 목소리까지 잠긴 상황에서도 소리 없는 아우성을 내질렀다.
그녀를 찾아낸 뒤로 또 다른 숙제가 생겼다. 이 소식을 내 책 <놀멍 쉬멍 걸으멍> 독자들과 그녀를 아는 야마토릴게임 올레꾼들에게 전해야 한다는 것. 감기 기운에 미뤄두다가, 올해가 가기 전에 노트북을 펼쳤다. 이제 이야기를 시작해 보련다.
# 너무나 죽이 맞았던 산티아고 길동무, 헤니와 나
눈치 빠른 올레꾼이라면 내가 찾은 '그녀'가 누구인지 짐작했을 것이다. 그렇다. 각자의 나라로 돌아가 각자 길을 내자며 나를 부추겼던 '영국 여자 바다이야기5만 헤니'다.
우리가 카미노 데 산티아고에서 만난 일은 지금 와서 생각해보면 운명에 가까운 일이었다. 내가 그녀를 만난 것은 산티아고 순례길 여정 중 가장 혹독하고 무서운 하룻밤을 보낸 다음날이었다. 노을 질 무렵 알베르게가 있는 마을에 겨우 도착했지만 침대는 이미 다 찼다. 헛간이라도, 어디서든 재워달라 했지만 거절. "2km만 더 가면 손오공릴게임 다른 알베르게가 있다"는 말이 유일한 친절이었다.
한 발도 떼기 힘든데 2km라니. 눈물이 터져나올 것 같았지만 겨우 발길을 떼어놓았다. 오르막 산길 같은 곳으로 접어들면서 날은 순식간에 어두워졌다. 그때 멀리서 무언가가 달려오는 느낌이 들었다. 덩치 큰 개가 한 마리도 아닌 서너 마리였다. 개들의 공격을 자극하면 어쩌나 겁이 나서 한 발 바다이야기게임2 자국도 움직이지 못한 채 한국말로 외쳤다. "누가 저 개들 좀 잡아달라고요!"
하늘은 무심하지 않았다. 고갯마루에 나타난 누군가가 휘파람을 불자 개들은 그에게 달려갔다. 알고 보니 그는 알베르게 운영자였고 개들은 그의 식구였다. 원망과 고마움이 교차하는 가운데 침대를 배정받자 그제야 살았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곳은 산중 알베르게라 거의 나 혼자였다. 마을 이름은 카사노바. 잊을 수 없는 이름!
# 카사노바 카페에서 만나 멜리데에서 뿔뽀를 먹다
다음날 새벽, 전날 저녁도 못 먹고 잠든 터라 배가 고팠다. 동네 카페에 아침을 먹으러 들어갔다. 카페의 아침은 행복 그 자체였다. 한 끼를 굶은 뒤 먹게 된 스페인식 계란 감자 오믈렛의 맛과 카페 콘 라체(스페인식 밀크커피)의 맛은 황홀할 정도였다.
사진=(사)제주올레
내가 너무 행복해 보여서였을까. 맞은편 테이블에 앉아 있던 여자가 인사를 건넸다. 그녀가 바로 헤니였다. 헤니는 영국에서 왔고 오늘로 32일째 걷는다고 했다. 나는 33일째. 하루 차이로 시작한 우리가 카사노바에서 속도가 맞아떨어진 것이다. 우리는 짧은 대화를 나누고 그녀가 먼저 떠났다. "부엔 까미노!" 길 위의 만남과 헤어짐은 늘 쿨하다.
그런데 얼마 못 가 길가 큰 나무 그늘 아래 늘어지게 쉬는 여자가 보였다. 헤니였다. 그 모습을 보자 숙제하듯 걷는 내가 부끄러워졌다. 나도 옆에 철퍼덕 앉아 한참을 멍 때렸다. 그리고 수다를 나누던 끝에 우리 둘 다 다음 마을 멜리데에서 뿔뽀를 먹고 싶다는 소망이 같다는 걸 확인했다. 헤니는 맛집 정보도 갖고 있었다. 그녀를 따라가기로 했다.
뿔뽀는 기대 이상이었다. 토속 맛집 분위기 속 올리브오일과 스페인식 고추로 맛을 낸 문어는 놀랄 만큼 부드러웠다. 물 대신 선택 가능한 '비노 블랑코(화이트 와인)'를 곁들여서 우리는 한껏 여유로워져서 산티아고 수다를 떨기 시작했다. 왜 직장을 그만뒀는지, 무엇을 버리고 얻었는지, 좋았던 순간과 힘들었던 순간은 언제였는지.....
우리는 둘 다 40대 후반~50대 초반, 20년 넘게 하던 일을 내려놓고 이 길을 택한 중년 여성이라는 점에서 통하는 게 많았다. 이 길 위에서 깨달은 점, 얻게 된 변화도 너무나 비슷해서 놀라울 정도였다. 국적도 다르고, 직업도 다른데도 불구하고. 우리의 공통된 결론도 있었다. "길은 행복한 종합병원"이라는 것. 걷다 보면 다리에 근육이 생기고 지방이 빠져나가듯이 정신에도 근육이 생기고 지방은 빠져나가서 몸과 마음이 절로 치유가 된다는 것이 우리 둘 다 한 달이 넘는 강행군 끝에 내린 결론이었다.
대화는 '산티아고 이후'로 이어졌다. 헤니는 귀국하면 고향 해안가 마을에 길을 내겠다고 했다. "왜 이런 길이 스페인에만 있어야 하느냐. 각 나라, 각 마을에 이런 길이 있어야 한다"는 주장이었다. 나는 속으로 허걱했다. 나도 제주에 이런 길이 있으면 좋겠다고 생각은 했지만, 누군가 해주길 바랐지 내가 할 생각은 없었다. 귀국하면 제주도 언론에 이런 내용으로 글을 써서 기고해야겠다고 마음먹은 게 고작이었다. '아, 그런데 이런 일을 자신이 직접 하겠노라고 마음먹는 사람도 다 있구나.' 입을 떡 벌리고 있는 나에게 헤니는 강력하게 제안해왔다. "당신도 고향에 길을 내라. 한국에서, 나는 영국에서. 나중에 서로 길을 교류하자."
그녀의 열정적인 설득은 산티아고 길을 걷는 내내 어린 시절 걸었던 제주 서귀포의 바닷가, 오름 풍경을 떠올리며 그리워하던 나, 2000년대 접어들어 해외여행 붐이 일면서 싸구려 바가지 관광지 취급을 받는 고향 제주를 안타까워하며 발을 동동 구르던 나, 산티아고길에서 제주를 되살리고 그 순정한 매력을 제대로 보여줄 수 있는 강력한 해법 하나를 발견하고 이걸 어떻게 제주 사회에 알리고 설득할까 고민하던 나에게 기름을 붓는 역할을 했다. 나는 결국 불타올랐다. '그래, 내가 고향에 돌아가 직접 길을 내자. 이 영국 여자도 그런다잖아.'
나는 나도 모르게 그녀를 향해 고개를 끄덕였다. 우리는 꼭 다시 만나자며 연락처를 주고받았다. 그녀는 런던의 기차역에서 연락하면 마중 나오겠노라며 집주소와 연락처, 메일 주소까지 적어주었다. 물건을 잘 잃어버리는 나는 그 종이를 꽁꽁 숨겨뒀다. 영영 못 찾게 될 줄도 모르고.
사진=(사)제주올레
그 뒤 스페인에서 귀국해 제주로 귀향한 나는 동생과 탐사대원들과 길을 찾고, 잇고, 열었다. 그리고 자원봉사자들과 함께 18년 동안 그 길을 지키며 살았다. 그 시간 내내 나는 헤니를 잊지 않았다. 힘들 때도, 벅찬 보람을 느낄 때도 마음속으로 묻곤 했다. "당신도 이렇게 힘든가요, 이렇게 벅찬 보람과 환희를 느끼나요?"
하지만 그녀에게 직접 물을 수는 없었다. 주소를 적어둔 종이가 아무리 뒤져도 나오지 않았기 때문이다. 나는 외국인을 만날 때마다 헤니 이야기를 하며 그녀를 찾아달라고 부탁했다. 세계 트레일 컨퍼런스에서도, 아시아 트레일 컨퍼런스에서도, 길에서 만난 외국인 올레꾼들에게도. 그러나 그 어느 곳에서도 헤니의 소식은 들려오지 않은 채 그렇게 세월만 흘러갔다.
# '미싱 헤니 프로젝트'와 AI가 찾아낸 기적
헤니 찾기를 다시 떠올린 것은 2024년 9월 말 축제를 앞두고 미국 출신 올레꾼 크리스티나를 만나면서였다. 유엔에서 영양사로 일하며 식량 원조가 필요한 여러 나라를 다닌 전문직 여성 크리스티나는 한국인 직원 소피아의 추천으로 제주올레를 걸으러 왔다고 했다. 제주올레여행자센터에서 우연히 만난 그녀와 7코스를 함께 걷다 나는 또다시 헤니 이야기를 꺼냈다. 아, 이 친구 반응은 기대 이상이었다. 눈을 반짝이며 깊은 흥미를 보였던 크리스티나는 한 달여 뒤 제주를 떠나며 자발적으로 약속했다. 당장 오늘부터라도 '미싱 헤니 프로젝트팀'을 꾸려 그녀를 꼭 찾아보겠노라고. 유엔 동료 소피아와, 올레에서 만난 이탈리아 여성 마르게르따도 팀원으로 끌어들이겠다고. 나는 뛸 듯이 기뻤다.
그 뒤로 미싱 헤니 프로젝트 팀은 유럽 사람 찾기 사이트, 트레일 관련 밴드와 SNS에 사연을 올리며 헤니를 찾기 위해 노력했다. 뜻밖의 조력자도 나타났다. 한국에서 태어나 미국에서 살다 은퇴 후 산티아고길 자원봉사를 한다는 여성 안느였다. 안느는 영국인 순례자들이 많이 쓰는 밴드와 사이트를 알려주며 사연을 올려보라고 조언했고, 프로젝트의 다섯 번째 팀원이 되었다.
그렇지만 한 달여 기간이 흐르도록 별 소득은 없었다. 크리스티나가 산티아고 길 프랑스 구간 시작점인 생 장 피에드포르 산티아고협회를 찾아 오래된 기록을 확인하려 했으나, 그런 기록은 없거나 개인정보가 남아 있지 않다는 답만 돌아왔을 뿐이다. 모두가 풀이 죽어갈 즈음, 팀내 탐정으로 통하던 소피아가 새로운 제안을 던졌다. 내게 남아 있던 유일한 단서인 헤니의 사진을 AI에게 보여주고 찾아달라 해보자는 것이었다. 하지만 해상도도 낮고 20여 년 전 사진이라 기대가 크지 않았다. '아무리 AI라 해도 긴 세월과 드넓은 공간을 건너뛰어 과연 그녀를 찾아낼 수 있겠어?'. 나로선 상상이 안 가는 일이었다.
사진=(사)제주올레
그런데 소피아가 얼마 뒤 사진 두 장을 보내왔다. 스페인 안달루시아 지방의 작은 잡지에 실린 인물 두 명의 사진이었다. 한 사람은 영국 이름, 다른 한 사람은 스페인 이름인 듯했다. 이에 소피아가 직접 이메일로 연락해 확인해보기로 했다. 놀랍게도 AI가 찾아낸 두 여성은 동일 인물이었다. 영국 이름과 스페인 이름이 달랐을 뿐이다. 그 이유도 밝혀졌다. 그녀는 오래전 영국이 아니라 스페인으로 이주해 안달루시아에 살고 있었다. 그녀의 본명은 잔느 캐서린 헤니. 내가 기억한 헤니는 이름이 아니라 성이었던 것이다.
극적인 사람 찾기에 성공한 이후 잔느는 소피아의 안내로 우리 밴드에 가입했고, 그 뒤 많은 이야기를 나눌 수 있었다. 잔느는 무엇보다 내가 한국으로 귀국한 뒤에 실제로 길을 냈다는 사실에 감동받았다면서, 내가 아직도 자기를 기억하면서 자기를 찾고 있다는 사실에 놀라움을 금치 못했다. 그녀는 나와 다시 연락이 이어지고 하룻밤 사이 제주올레에 대한 인터넷 자료를 다 뒤져본 끝에, 내가 이토록 유명한 길을 냈다는 사실에 더더욱 감동을 받았다면서 그 길을 꼭 와서 걸어보고 싶다는 희망을 열렬히 피력했다.
나는 물었다. "당신은 길을 냈나요? 그 길을 지키느라 나처럼 개고생을 했나요?" 잔느는 대답했다. 직접 길을 내진 못했지만 또 다른 길을 걸었노라고. 트레일의 나라답게 영국에는 이미 너무 많은 길이 나 있었기에 그녀는 길 내기를 포기했고, 대신 환경을 지키기 위해 영국의 소수파 환경정당에 들어가 열심히 활동했다고 한다. 그런데 어느 날 노후에 살고 싶어 자그마한 땅을 사둔 안달루시아 산중 마을에 대규모 개발이 추진된다는 소식이 들려왔다. 이에 당장 스페인으로 가서 현지에서 환경정당을 만들어 난개발 반대 운동을 해왔다고 했다. 그것 또한 자기에게는 '길'이었다는 것이다.
이 긴 글을 마무리지어야 할 때가 되었다. 여러분 기대하시라, 2026년 새해 제주올레 자원봉사자들에게 한 해 수고하셨다고 감사를 전하고 유공자들에게 상을 수여하는 '2026 다시 봄, 제주올레'(땡큐파티) 즈음에 그녀와 그녀의 친구가 보름 동안 제주를 방문하기로 했으니. 파티에도 참석하겠지만, 그녀는 그녀의 길동무가 그녀의 제안을 받고 마음을 내서 만들기 시작한 그 길을 걷고 싶어하니, 올레길도 몇 군데 걸을 것이다. 73세의 나이라서 빡세게 완주는 못해도 놀멍 쉬멍 걸으멍 멍 때리면서 제주의 바다와 오름과 구름과 마을과 해녀 그리고 제주 음식을 한껏 즐기고 보고 만나고 맛볼 생각에 그녀는 벌써부터 설레고 있단다. 그 길에서 헤니, 아니 잔느를 만나면 활짝 미소를 건네주시길. 감사하다고 말해주시길. 그녀가 없었더라면 제주올레 길은 없었을지도 모를 일이니.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