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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에 아닌 매주십시오. 거 는 것 하얀민영 시인이 지난 17일 별세했다. 다음날 저녁 서울 동대문구 삼육서울병원에서 열린 민영 시인의 추모식이 끝나고 유족과 문인들이 기념사진을 찍고 있다. 정우영 시인 제공


민영 선생은 짧은 시에 세상 한폭을 그득히 담을 줄 아는 분이셨습니다. 팍팍한 사람살이 위로할 줄도 아시고요, 상점의 물건 소개 글을 반듯하게 쓰기 위해 독학의 붓을 잡았던 분이기도 하지요. 중학교 1학년까지가 학업의 전부였으니 선생께는 독학 아닌 것 없었습니다. 시업도 철저하게 혼자 쓰고 익혔습니다. 그럼에도 어찌 그리 단아하게 한 세계를 이루었을까요. 혼자 이룬 사람 특유의 고단하고 매운 그늘 한점 없으셨지요.
제 장인이 돌아가셨을 때, 신경림 선생과 함께 조문바다이야기꽁머니
오셔서 아버님 가시는 길 살펴주셨는데요. 결례를 무릅쓰고 말씀드리면, 두분 함께 향 올리시는데 뒤태가 어찌나 고와 보이던지요. 사람의 품격이 뒤태에서 피어남을 저는 단박에 깨달았습니다. 이로부터 저도, 제 시의 뒤태를 의식하게 되었지요.
중1 중퇴하고 시도 독학으로 익혀 짧은 시에 세상 한폭 그득히 담고 ‘새파란 눈’으로 민족 정서 녹여소액투자
내
그렇다고 해서 선생을 무르게 봐서는 곤란합니다. 첫 시집 ‘단장’(斷章)의 표제작을 보면, 선생은 이렇게 쓰고 있습니다. “내연(內燃)의 피/ 독이 되어 거꾸러질 땐/ 뜨겠다, 죽어도 감지 못할/ 새파란 눈을!”(시 ‘단장’ 중) 결의가 만만치 않지요. 저는 민영 선생의 일생을 관통한 삶의 좌표가 저 ‘새파란 눈’일 거라 짐작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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염무웅 선생은 민영 선생의 시 세계를, “식민지 시대부터 분단과 전쟁을 거쳐 민주화 시대에 이르는 고난의 역사 한가운데를, 다른 누구의 것도 아닌 바로 자기 자신의 눈으로 보고 몸으로 겪으면서 시인의 고유한 감성으로 표현”(염무웅, ‘역사 앞에 선 한국문학’ 중 ‘뿌리 뽑힌 자의 노래’)했다고 쓰셨습니다. 염 선생도 이처럼 갈파하신 저 ‘일본주식시장
자기 자신의 눈’ ‘새파란 눈’이 말년에 이르러서는, 간절한 염원으로 나타납니다. 이 생이 다하기 전에 실향과 분단을 넘어서고 싶으셨던 거지요. 새벽에 눈을 뜨면 선생은 기원합니다. “장백산 올라가는 멧등길에/ 하얗게 피어 있던 백도라지꽃,/ 그 북간도의 화전 마을을/ 새벽에 눈을 뜨면 찾아가야 한다”고. “더 늦기 전에!”(시 ‘새벽에 눈을 뜨면’ 중) OCI머티리얼즈 주식
그런데 어쩌지요. 안타깝게도 선생의 이 바람은 이뤄지지 못했습니다. 영령으로라도 훨훨 날아서 그 북간도의 화전 마을 꼭 다녀오시길 바랍니다.



경기도 용인공원묘원의 민영 시인 묘소. 정우영 시인 제공


글씨를 쓰실 때면 선생은 산연(山然)이라는 아호를 적으셨는데요, ‘엉겅퀴’라고 쓰셨어야 하지 않을까 싶습니다. 노래로 불리워 그런지 시 ‘엉겅퀴꽃’을 기억하는 사람들 실로 적지 않았거든요. 왜 아니겠습니까. 이렇게나 쉬운 말과 정서로, 살갑게 와 닿는 시가 그리 많진 않잖아요. “엉겅퀴야 엉겅퀴야/ 철원평야 엉겅퀴야/ 난리통에 서방잃고/ 홀로사는 엉겅퀴야// 갈퀴손에 호미잡고/ 머리위에 수건쓰고/ 콩밭머리 주저앉아/ 부르느니 님의이름// 엉겅퀴야 엉겅퀴야/ 한탄강변 엉겅퀴야/ 나를두고 어디갔소/ 쑥꾹소리 목이메네” 내용적으로는 슬프기 그지없지만 운율감 있는 정조는 절로 입을 달싹거리게 만듭니다. 그런 점에서 대중 친화적인 행보를 좀 더 펼치셨으면 어땠을까 하는 아쉬움이 남습니다.
민족문학작가회의·민요연구회 등서 굴곡진 사건의 ‘배후’ 기꺼이 맡아 ‘월북작가’ 이념 테러에 설 땅 없던 이태준 문학비 건립 발벗고 나서
그러나 아무래도 선생은 전면에 나서는 유형이 아니셨습니다. 고은·신경림·백낙청 선생 등과 함께하시되 한걸음 뒤에 서 계셨지요. 물론, 뒷짐만 지고 있진 않았습니다. 역사의 굴곡진 사건에는 늘 같이 어울리셨습니다. 선생은 명예나 위명은 양보하고 책임은 공동으로 지시는 역할을 기꺼이 맡았습니다. 민족문학작가회의 부회장이나 민요연구회 회장처럼, 무엇인가의 배후로 남으셨습니다. 선생이 쓰신 것처럼 그야말로 ‘내연의 피’로 들끓는, 오연한 정신 세계를 갖추고 말이지요.
하지만, 앞장서야 할 때는 올연히 단단하게 밀고 나가셨습니다. ‘이태준 문학비’ 건립이 대표적 사례일 것입니다. 한국 문학사상 주요 작가인 이태준은 월북작가라 해서 남한 땅 어디에서도 설 자리가 없었습니다. 선생이 발 벗고 나서서 그 모든 난관을 뚫고 강원 철원 대마리에 이태준 문학비를 세울 때까지는. 여러 단체와 사람들 이름이 거명되고는 있습니다만, 민영 선생 아니었으면 지금도 이태준은 빨갱이 취급을 받고 있을지 모릅니다. 저는 이태준 선생의 문학적 위업을 이념의 테러로부터 벗겨주신 게 바로 민영 선생이라고 단언합니다.



민영 시인이 정우영 시인에게 서명해서 준 시집들. 정우영 시인 제공


뭐니 뭐니 해도 민영 선생은 다만 시인이길 진심으로 바랐습니다. 마지막 시집이 된 ‘새벽에 눈을 뜨면 가야 할 곳이 있다’ ‘시인의 말’에서 선생은, “시를 쓴다는 것” “그것만이 내가 할 수 있는 유일한 노동, 유일한 기쁨이었”다고 씁니다. 선생이 제게 주신 이승에서의 마지막 말씀도 ‘시, 시’였습니다. 돌아가시기 사흘 전 병실에서 혼미한 가운데에도, 침대 옆 책들 중 ‘민영 시 전집’ 가리키며 “선생님, 애쓰셨어요” 귀에 부어드리자, “시” 하고 또렷이 대답하셨습니다. 갑자기 왜 시를? 하고 선생님 눈길 따라 가보니 제 검지가 책 ‘민영 시 전집’ 속 ‘시’ 자를 향해 닿아 있었습니다. 선생의 “시”라는 답변에서 저는 “시를 살아라” 하는 유지를 읽었습니다. 이승에서의 마지막 숨을, “시”로 남기신 것이라고 전 믿습니다.
저는 민영 선생이야말로 우리 시대 마지막 민족 시인이라고 여깁니다. 선생처럼 우리 민족사를 온몸으로 껴안고 시를 적어내는 시인, 앞으로는 나오기 어려울 거라고 봅니다. 선생은 참으로 힘겨운 고난들을 이겨내며 우리의 민족 정서를 ‘새파란 눈’으로 시에 녹여냈습니다. 선생은 가셨어도 선생이 남기신 빛나는 시작들은 새록새록 우리의 가슴을 적실 것입니다.
저 산벚꽃 핀 용인의 산등성이에서 오래도록 평안을 누리시길요. 고맙습니다, 선생님. 민영 선생님.
정우영 시인
※중간 제목은, 민영 선생님 시 ‘민들레꽃―딸에게’에서 가져옴.



민영 시인의 빈소 모습. 정우영 시인 제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