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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신자 ㈜장충동왕족발 대표가 지난달 24일 청주 현도면 장충동왕족발 공장에서 한겨레와 만나 환하게 웃고 있다. 최예린 기자


“모두 정규직으로 전환합시다!”
2001년 1월 회사를 인수해 대전 본사로 출근한 첫날 신신자(71) 대표는 “반장 몇 명을 빼곤 다 일용직”이란 업무 보고를 받고 그날로 전 직원을 정규직 전환했다. ㈜장충동왕족발 대표로 취임해 사인한 첫 결재였다. 다음 날 점심엔 직원들의 자축 떡이 올랐다. 회사 기념일에 떡을 먹는 이 회사 전통은 그렇게 시작됐다.
경남 거창에서 첫주택구입 태어나 서울에서 유년기를 보낸 신 대표는 남편과 결혼하며 대전에 왔다. 29살이던 1983년 그는 생계를 위해 은행동 중심가에 레스토랑 문을 열었다. 당시로선 드문 고급스러운 인테리어와 깨끗한 화장실의 식당은 약혼식 장소로도 인기를 끌었다고 한다. 신 대표는 전체 조화를 위해 식당뿐 아니라 자비를 들여 건물 외관까지 손봤고, 그걸 보고 감동한 건물주 어르 전세자금대출 거치기간 신은 월세도 받지 않고 세입자인 그를 딸처럼 대했다. 5년 뒤 암에 걸린 그 어르신이 시세의 절반 값에 식당 건물을 넘기면서 신 대표는 30대 초반에 건물주가 될 수 있었다. 그걸 밑천으로 몇 년 뒤 근처의 동화빌딩을 사면서 신 대표의 남은 인생은 꽃길일 것만 같았다.
그러나 봄날은 잠시였다. 가정 문제의 여파로 건물이 국세청에 압류되면서 사채이자 감당하기 힘든 경제적 압박을 받게 됐다. 보증금 총액만 10억원인 상황에서 신 대표는 세입자들에게 상황을 솔직하게 설명하며 “당분간 모든 월세는 제가 갖지 않고 그대로 은행에 예치하겠다. 꼭 문제를 해결해 여러분에게 피해를 주지 않을 테니 저를 믿고 조금만 기다려달라”고 부탁했다. 놀랍게도 7개 매장의 세입자 모두 군말 없이 “그렇게 하자”고 했다. 그것 4천만원 대출 이 너무도 고마워 신 대표는 이후 30년째 동화빌딩 월세를 올리지 않았다.
지난달 24일 청주 현도면의 장충동왕족발 공장에서 만난 신 대표는 “내 어이없는 제안을 7개 상점 모두 별말 없이 따라준 건 지금 생각해도 신기한 일이다. 그때 결국 진심은 통한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솔직하게 있는 그대로 일을 처리하는 습관도 그때부터 시작된 것”이 제한대출그룹 라고 말했다.
1997년 부산에 장충동왕족발 지점 내 전국 매장 중 압도적 매출 1위 달리다 경영난 겪던 본사 제안으로 회사 인수
대표 되고 바로 전 직원 정규직 전환 매해 수익금 30%는 특별상여금 지급 직원 자녀들 대학 등록금까지 지원 가공육 제품 납품으로 사세도 키워 “직원에게 반값 아파트 선물이 꿈”
억새 같은 그의 근성은 장충동왕족발과 인연으로 이어졌다. 수입원이 없어진 상황에서 1997년 8월 그는 아는 이 없는 부산으로 내려가 족발 장사를 시작했다. 가르칠 자식들이 있기에 그대로 주저앉아 있을 순 없었다. 3개월 뒤 아이엠에프(IMF)가 터져 절망적인 상황에서도 신 대표는 ‘고객의 권리’를 우선하는 경영을 밀어붙였다. 채솟값이 치솟아도 상추는 2∼3장씩 꼭 더 손님상에 냈고, 막노동하는 손님들 신발을 조용히 닦아두기도 했다. 옆 동네 손님의 간절한 부탁에 사장이 지하철을 타고 족발 배달을 가기도 했다. 결국 그가 운영한 ‘장충동왕족발 동래점’은 줄 서서 먹는 맛집으로 변모했고, 압도적인 기록으로 전국 매출 1등 지점이 됐다.
4년 뒤 상황이 어려워진 본사는 1등 점주인 그에게 회사 인수를 제안했다. 마침 압류로 묶였던 대전 건물 문제까지 해결되면서 2001년 1월7일 장충동왕족발을 인수했다. 그해 신 대표는 산업시찰단으로 찾은 일본 홋카이도의 ‘미우라 아야코 기념관’에서 남은 인생을 관통하는 깨달음을 얻었다. 일본의 작가인 미우라 아야코는 아사히카와에서 남편과 작은 생활용품점을 운영했는데 “우리 가게가 장사가 너무 잘 돼 인근 다른 가게들이 피해를 보고 있으니 영업을 줄이자”는 남편의 뜻에 따라 품목 수와 영업시간을 반으로 줄였고, 시간 여유가 생겨 도서관에 다니면서 탄생한 작품이 소설 ‘빙점’이었다.
“기념관에서 그 이야기를 듣고, 소름 끼치는 전율을 느꼈어요. 더불어 같이 살겠다는 마음으로 이웃을 배려하고 양보하는 철학에 크게 감동했죠. 그때 미우라 선생님 초상화 앞에서 다짐했어요. ‘선생님처럼 살 자신은 없지만, 남이 개발한 제품을 가져다 내 브랜드를 만들어 이익을 내지 않겠다’고요.”



신신자 대표 집무실 앞에 붙어 있는 사훈. 신 대표는 평생 ‘당당하되 교만하지 말고, 겸손하되 비굴하지 말자’는 이 말을 가슴에 품고 살아왔다고 했다. 최예린 기자


매해 창립기념일 전 직원 160여명에게 주는 ‘특별상여금’도 ‘더불어 살겠다’는 다짐의 실천이다. 지난해 결산한 수익금의 30%는 직원에게 돌려주고, 그중 10%는 사회 환원한다. 신 대표는 2010년 실습 나온 지적장애 고등학생들을 직원으로 끌어안아 그들의 성장과 자립 과정을 15년 동안 함께하고 있다. 그는 장애를 가진 직원들을 ‘우리 아이들’이라고 부르고, 그들을 포함한 모든 직원이 함께 매해 국내·해외 연수를 떠난다. 전 직원의 자녀 등록금을 대학까지 전액 지원하고, 원생이 1명이라도 회사 어린이집 운영을 이어가고 있다. 혼자 사는 직원을 위한 기숙사도 여러 곳에 만들었고, 최근 전북 무주에 정년퇴직한 직원들을 위한 쉼터도 조성했다. ‘바른 먹거리’에 대한 집념으로 좋은 재료로 첨가물 없이 건강한 음식을 만들기 위한 도전도 멈추지 않고 있다. 편육·족발 등 가공육 제품을 개발해 편의점·군 등에 납품하며 사세를 키워 지난해 장충동왕족발 매출액은 400억원을 넘겼다.
“친환경주의 농법을 실험하고 알리는 ‘바른 먹거리 타운’을 꼭 만들고 싶어요. 그 목표 때문에 더뎌지고 있지만, 언젠가는 전 직원에게 1000% 특별상여금을 주고, 반값 아파트를 선물할 수 있도록 계속 뛸 거예요. 직원들과 함께 잘 사는 것. 그것이 제가 이 회사를 경영하는 유일한 이유이고, 꿈입니다.”
최예린 기자 floye@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