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재기는 공공보건을 위협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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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김철 작성일20-04-01 00:10 조회362회 댓글0건관련링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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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로나19 우려로 사재기하는 마드리드 시민들. 스페인 수도 마드리드의 한 슈퍼마켓에서 10일(현지시간)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확산 우려로 사재기에 나선 시민들이 마스크를 쓴 채 계산대 앞에 줄지어 서 있다. 스페인 보건당국은 전날 마드리드를 중심으로 코로나19 확진자가 급증함에 따라 마드리드 내 유치원과 대학을 포함한 모든 학교가 오는 11일부터 2주간 문을 닫는다고 밝혔다. 마드리드 AP/연합뉴스
바이러스와의 싸움이 장기화되면서 세계 곳곳에서 독특한 현상들이 나타나고 있다. 그 중 하나가 패닉 소비(panic buying)라고 하는 사재기이다. 마스크나 손세정제나 식료품은 이해되는 측면이 있지만 일본이나 홍콩, 미국, 유럽, 오스트레일리아 등지에서는 화장지 사재기가 한창이다. 마트마다 화장지 선반이 비어가고 있다. 화장지를 두고 마트에서 싸움이 일어나서 경찰이 개입하는 등의 일들도 심심치 않게 벌어지고 있다. 무엇이 사람들로 하여금 이러한 패닉 소비를 일으키는 걸까?
행동을 통한 통제감의 회복
패닉 소비는 보통 재난 상황에서 상황의 불확실성과 불안이 높고 개인이 할 수 있는 일이 별로 없는 경우 발생한다. 인간은 미래에 대한 불안을 느끼면 '계획과 준비'를 통해 불확실성을 해소하려는 속성을 지녔기 때문에 불확실성이 높을수록 뭐라도 해야겠다는 생각을 갖게 된다.
이 과정에서 자기 수준에서 사용 가능한 지식과 자원을 총 동원해서 문제를 정의하고 나름의 해결책을 만들어 낸다. 이 과정에서 정말 좋은 해결책과 계획을 찾아내는 경우도 많지만, 반대로 현실적인 해결책과는 전혀 상관이 없으면서 단지 마음만 편하게 해주는 행동에 도달하는 경우도 많다.
예컨대 인류는 처음에 천둥이 쳤을 때 불안에 떨며 “어떡하지”를 외쳤다. 그러다 신이 노하셔서 그런 거라고 문제를 정의했다. 그리고 이어 신이 노하신 것이 문제이므로 대규모의 제사를 지내는 것으로 문제를 해결하고 편안한 마음으로 잠자리에 눕는 경우와 비슷한 맥락이다.
이렇게 문제 상황에서 뭐라도 해봄으로써 불안을 줄이고 통제감을 얻으려는 본능은 문제 해결의 동력이 된다는 점에서 인간의 큰 장점이면서 때로는 비합리적이어 보이는 행동을 낳는 주 원인이다.
패닉 소비 또한 이런 불안 해소 과정과 맞닿아 있다. 보이지 않는 바이러스에 뭔가 대비하긴 해야겠는데 딱히 할 수 있는 일이 없다. 손 씻는 일은 너무 평범해 보이고 손을 씻어도 그닥 안전함을 느끼지 않는다. 바이러스가 퍼져나가는 상황에서 장기적인 격리 생활이 그나마 내가 할 수 있는 일이다. 당분간 사람들이 많은 마트 같은 곳은 피해야 한다. 그렇다면 지금 당장 할 수 있는 것은 생필품을 쌓아 놓는 것이라는 결론에 다다를 수 있다. 여기에 각종 루머가 소비 행동을 촉진시킨다.
예컨대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를 통해 대부분의 화장지가 중국에서 생산되고 있는데 중국의 생산능력이 심각하게 저하되었으므로 곧 세계에 화장지 위기가 닥칠 것이라는 루머가 퍼진다. 가장 먼저 희소해질 것 같은 생필품인 화장지를 차지하기 위해 모두가 마트로 달려간다.
가서 직접 화장지 선반이 텅텅 비어있는 것을 보거나 너도 나도 화장지를 잔뜩 사가는 것을 보면 “다들 화장지를 사는 데는 그럴만한 이유가 있을 것”이라며 이유는 몰라도 화장지부터 집게 된다. 화장지 사재기는 곧 전국적 나아가 전세계적 현상이 된다.
실제로 이러한 루머가 퍼져나갔고 싱가폴의 경우 수상이 직접 화장지는 대부분 국내에서 생산되고 있으며 따라서 화장지 공급에 차질이 생길 일은 없다고 발표함으로써 사재기 현상이 수그러들었다고 한다.
이성적인가 비이성적인가
이렇게 나름 문제를 해결해보려는 내적 시스템이 만들어낸 과민반응 같은 것이므로 패닉 소비를 무조건 비이성적인 행동이라고 보기는 어렵다. 무엇보다 적당한 해결책과 적절한 정보가 없는 것이 더 큰 문제일 수 있다.
특히 구성원간, 또 정부나 의료기관 같은 주요 기관 같은 사회적 단위의 신뢰가 낮은 사회의 경우 사람들은 위기 상황에서 '각자도생'만이 살 길이라고 판단한다. 주변 상황이 어떻게 되든 자급자족이 가능하도록 가급적 많은 물품을 쌓아두는 것이 바람직한 행동이 된다.
비슷하게 사회적으로 소외된 사람들의 경우 적절한 정보와 도움을 받기 어려우므로 더더욱 자기 선에서 어떻게든 살 방법을 도모해야 하는 상황이 된다. 이렇게 소외되어 있는 사람들이 많거나 개인이 각자도생을 외쳐야 하는 저신뢰 사회에서는 그렇지 않은 사회에서보다 패닉 소비가 더 쉽게 번진다.
정리하면 모든 재난 상황에서 그런 것은 아니고 ①위험이 눈 앞에 닥쳐왔다고 느낄 때. 나도 예외가 아니라고 느낄 때 , ②탈출구가 보이지 않을 때, ③그나마 존재하는 자원들도 얼마 남지 않았다고 느낄 때, ④중요한 정보로부터 소외되어 있다고 느낄 때, 신뢰도가 낮을 때 패닉 소비가 발생한다.
여기에 사람들은 재난 상황이 다가오면 평소보다 더더욱 자신이 속한 무리 중심적인 행동을 보이게 된다. 나 혼자만 생존하려고 하기보다 '가족', '친구' 같이 친밀한 사람들에 대한 안위를 함께 걱정하게 된다. 장기적인 생존을 위해서도 자신에게 우호적이고 신뢰할 수 있는 무리와 함께 살아남는 것이 더 도움이 된다. 나 하나만 생각하면 물 한통 휴지 한 통만 사면 되지만, 가족들 것까지 챙겨야 하기 떄문에 모두가 물 열 통과 휴지 열 통을 사게 되는 식이다. 이 또한 사재기를 부추기는 한 가지 요인이다. 사재기는 온전히 자신만을 위하는 이기적인 행동인 것처럼 보이지만 실제로는 조금 사정이 다르다는 것이다.
어떻게 하면 좋을까
결국 문제를 이겨낼 수 있는 진짜 해결 방안을 모두가 함께 인지하는 것이 가장 좋은 방법이다. 갖지 않아도 되는 불안만 퍼트리는 루머나 가짜 뉴스를 경계하는 것도 중요하다. 사재기를 하면 정작 해당 물품이 가장 필요한 사람들에게 물건이 부족하게 되어(예컨대 정작 마스크가 필요한 의료진이나 환자가 마스크를 구하지 못하는 상황)정작 본인의 안전까지도 위험해질 수 있다는 사실을 인식하는 것도 중요하다.
싱가포르 심리학회에서는 다음과 같은 가이드라인을 제시했다.
① 위기의 공통성 인식하기: 나뿐만 아니라 이 사회의 모두가 같은 두려움과 위험에 처해 있고 나의 섣부른 행동으로 다른 사람들도 함께 불안해질 수 있음을 알 것
② 서로 존중하기: 주변 사람들의 불안과 공포도 함께 존중할 것. 특정 태도를 타인에게 강요하지 말고 그 사람의 상태를 이해할 것
③ 필요한 만큼 살 것. 사재기가 공공 보건을 위협할 수 있음을 기억할 것
④ 팩트 체크하고, 가짜 뉴스 거르기
⑤ 특정 타인을 비난하는 것은 분노를 허공에 표출하고 다른 사람들의 피로도를 높이는 행위일 뿐임을 알 것
⑥ 불안이 일상생활을 방해하는 수준이라면 전문적인 도움을 받을 것
잘 참고해볼만한 이야기들이다.
※ 참고자료
-Altstedter, A. & Hong, J. (2020). Why Rational People Are Panic Buying as Coronavirus Spreads. Bloomberg.
-Goh, T. (2020). Coronavirus: Psychological society lists 7 ways to manage panic following food, grocery buying sprees. The straits Times.
-Helsloot, Ira & Ruitenberg, Arnout (2004). Citizen Response to Disasters: A Survey of Literature and Some Practical Implications. Journal of Contingencies and Crisis Management, 12, 98-111.
-Kulemeka, O. (2010). Us Consumers and Disaster: Observing “Panic Buying” During the Winter Storm and Hurricane Seasons. ACR North American Advances.
※필자소개
박진영 《나, 지금 이대로 괜찮은 사람》, 《나를 사랑하지 않는 나에게》를 썼다. 삶에 도움이 되는 심리학 연구를 알기 쉽고 공감 가게 풀어낸 책을 통해 독자들과 꾸준히 소통하고 있다. 온라인에서 지뇽뇽이라는 필명으로 활동하고 있다. 현재는 미국 노스캐롤라이나대에서 자기 자신에게 친절해지는 법과 겸손, 마음 챙김에 대한 연구를 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