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승욱의 나우 인 재팬]손타쿠와 코드…영혼 없는 자들의 외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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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우린휘 작성일20-06-08 00:39 조회207회 댓글0건관련링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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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베 눈치보기, 외교에도 영향
모테기 외상, 한·일관계에 무관심
한국 관료는 정권 코드 맞추려
외교관 아닌 항일투사처럼 행동
먹구름 다가오는데 무력한 외교"아베노마스크를 착용하지도, 지참하지도 않은 학생들은 별도의 교실로 보내겠다."
지난달 말 일본 도쿄 인근 사이타마(埼玉)현의 한 공립중학교가 학부모들에게 배부한 유인물에 이런 내용이 담겼다. 아베 신조(安倍晋三) 총리가 나눠준 천마스크의 착용을 의무화하겠다는 지침에 일본 열도가 발칵 뒤집혔다.
일본 정부는 260억엔(약 2877억원)을 들여 각 세대에 두 장씩의 천마스크를 나눠주고 있다. 경제정책 '아베노믹스'에 빗대 '아베노마스크(아베의 마스크)'로 불리지만 "아베노믹스로 일어선 아베가 아베노마스크로 망하게 생겼다"는 말이 나올 정도로 반응은 좋지 않다.
"너무 작아 입과 코가 동시에 가려지지 않는다"는 불만이 쏟아지고, 감염 예방 효과가 작아 각료들조차 안 쓴다는 이 마스크를 학교는 왜 학생들에게 강요하려 했을까.
일본 야당은 장기집권이 부른 일본사회 내 '손타쿠(忖度·윗사람의 뜻을 헤아려 행동한다)' 문화의 영향이라고 비판했다. 손타쿠는 원래 윗사람의 분위기와 심기를 잘 살핀다는 좋은 의미에서 쓰였다. 그러나 모리토모(森友)·가케(加計) 사학재단 특혜 의혹과 '벚꽃보는 모임' 스캔들 등에서 정권에 굽신대는 관료들의 행태가 드러나면서 '알아서 긴다'는 부정적 의미가 강해졌다.
그 손타쿠가 교육계와 일선 학교까지 번지면서 아베 총리뿐만 아니라 아베노마스크까지 '귀하신 몸'이 됐다는 것이다. 담당 부처인 문부과학성과 사이타마현 교육위원회가 "전혀 모르는 일"이라고 버티며 이번 논란은 일선 학교 교사들의 단순 일탈로 덮이는 분위기다.
하지만 8년에 가까운 기록적인 장기 집권이 심어놓은 ‘손타쿠’란 이름의 바이러스는 이처럼 일본 사회 곳곳에 상처를 내고 있다.
한·일관계도 이를 피해 가지 못하고 있다. 일본 정부 내 사정에 밝은 도쿄의 소식통은 "한·일외교의 최전선에 서 있는 일본 외무성의 존재감이 사라진 것도 손타쿠의 영향"이라고 했다.
이 소식통은 "한국에 대한 아베 총리와 총리관저의 강경 기류를 의식한 모테기 도시미쓰(茂木敏充) 외상이 한·일 관계에 전혀 의욕이 없다"며 "아베 내각에서 외상을 지낸 전임자 두 사람과 비교하면 한국에 대한 이해도가 턱없이 낮고, 한국에는 관심 자체를 두지 않는다"고 말했다.
전임자들은 달랐다. '너무 신중하고 우유부단한 게 약점'이라던 기시다 후미오(岸田文雄·2012년 12월~2017년 8월) 전 외상조차도 결정적인 순간엔 제 목소리를 냈다.
2015년 위안부 합의 타결 직전 보수파의 반발을 걱정하며 머뭇거리던 아베 총리를 관저로 찾아가 "당신이 결단하지 않으면 안 된다"고 몰아세운 것이 대표적 장면이다.
바통을 이어받은 ‘괴짜 외상’ 고노 다로(河野太郞·2017년 8월~2019년 9월)는 더 적극적이었다. 징용 갈등의 출구가 안 보이자 "양국 정부·기업이 경제협력 명목의 기금을 창설하자"는 아이디어를 총리 관저도 모르게 강경화 외교부 장관에게 제안했다.
2018년 말엔 당시 국회의원도 아니었던 더불어민주당 김민석 민주연구원 원장과 단둘이 도쿄에서 오찬을 하며 한·일관계의 돌파구를 모색했다.
하지만 모테기 현 외상은 "총리 관저에서 오더가 떨어지기 전엔 조금도 움직일 생각이 없다"(익명을 요청한 일본 정부 소식통)는 것이다.
실제로 그가 외상에 취임한 뒤 9개월 동안 한·일관계와 관련된 진전된 입장 표명이나 아이디어가 주목을 끈 일이 없다.
이런 상황에선 외무성내 에이스급으로 통하는 '가나스기 겐지(金杉憲治) 외무심의관-다키자키 시게키(瀧崎成樹) 아시아·대양주국장- 나가오 시게토시(長尾成敏) 한국과장' 등의 한국 라인이 힘을 쓰기 어렵다는 분석이 나온다.
일본에서 '손타쿠'가 문제라면 한국에선 정권과 코드를 맞추려는 관료 사회의 행태가 자주 도마 위에 오른다.
현 정부의 남북관계 중시·대일 강경 기조를 의식해 "남북통일에 기여하기 위해 외교관이 됐다"고 공공연하게 자기 홍보를 하거나 마치 '항일 투사'인 양 행동하는 유형의 관료들 이야기다.
한·일관계가 전문 분야인 일본의 유력 언론인들 중엔 "일부 한국 외교관은 공·사석을 가리지 않고, 누구를 만나든 처음부터 끝까지 자기주장만 일방적으로 쏟아낸다""외교관이라기보다 정치인처럼 행세한다"는 불만을 토로하는 이들이 적지 않다.
심지어 자신이 한·일 관계에 직·간접적으로 관여하고 있음에도 한·일 관계 개선의 필요성을 강조하는 언론사 기획 보도에 대해 "정부를 비판하려는 불순한 의도가 있다"며 막말을 쏟아내는 경우도 있다고 한다. 이런 자세로 한·일관계에 돌파구가 뚫릴 리 없다.
지난해 11월 한국 정부의 한ㆍ일 군사정보보호협정(GSOMIAㆍ지소미아) 종료 유예, 어렵게 성사됐던 12월 정상회담 등으로 잠시 소강상태에 접어들었던 한·일 갈등의 시계가 시한폭탄처럼 최근 다시 움직이기 시작했다.
한국 정부는 지난 2일 일본의 수출 규제 조치에 대한 WTO(세계무역기구) 제소 절차 재개를 선언했다. '한·일관계의 화약고'라는 징용 관련 일본 기업 압류 자산의 현금화 절차도 한국 법원의 공시 송달로 다시 속도를 내고 있다.
청와대와 총리관저만 바라보는 '코드 외교'와 '손타쿠'로는 한·일관계에 몰려드는 무서운 먹구름을 막을 수 없다.
도쿄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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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베 눈치보기, 외교에도 영향
모테기 외상, 한·일관계에 무관심
한국 관료는 정권 코드 맞추려
외교관 아닌 항일투사처럼 행동
먹구름 다가오는데 무력한 외교"아베노마스크를 착용하지도, 지참하지도 않은 학생들은 별도의 교실로 보내겠다."
지난달 말 일본 도쿄 인근 사이타마(埼玉)현의 한 공립중학교가 학부모들에게 배부한 유인물에 이런 내용이 담겼다. 아베 신조(安倍晋三) 총리가 나눠준 천마스크의 착용을 의무화하겠다는 지침에 일본 열도가 발칵 뒤집혔다.
지난 2월 일본 중의원 예산위원회에서 아베 신조 총리(오른쪽)와 모테기 도시미쓰 외상(왼쪽)이 대화를 나누고 있다. 모테기 외상에 대해선 "한국에 대해 강경한 아베 총리관저의 기류를 읽어서인지 전임자들과 달리 한일관계엔 전혀 의욕이 없다"는 평가가 나온다. [지지통신 제공]
일본 정부는 260억엔(약 2877억원)을 들여 각 세대에 두 장씩의 천마스크를 나눠주고 있다. 경제정책 '아베노믹스'에 빗대 '아베노마스크(아베의 마스크)'로 불리지만 "아베노믹스로 일어선 아베가 아베노마스크로 망하게 생겼다"는 말이 나올 정도로 반응은 좋지 않다.
"너무 작아 입과 코가 동시에 가려지지 않는다"는 불만이 쏟아지고, 감염 예방 효과가 작아 각료들조차 안 쓴다는 이 마스크를 학교는 왜 학생들에게 강요하려 했을까.
일본 야당은 장기집권이 부른 일본사회 내 '손타쿠(忖度·윗사람의 뜻을 헤아려 행동한다)' 문화의 영향이라고 비판했다. 손타쿠는 원래 윗사람의 분위기와 심기를 잘 살핀다는 좋은 의미에서 쓰였다. 그러나 모리토모(森友)·가케(加計) 사학재단 특혜 의혹과 '벚꽃보는 모임' 스캔들 등에서 정권에 굽신대는 관료들의 행태가 드러나면서 '알아서 긴다'는 부정적 의미가 강해졌다.
일본의 한 공립학교가 지난달 말 학부모들을 상대로 배부한 유인물에 "아베노마스크를 착용하지 않은 학생들은 별도의 교실에 머물도록 조치하겠다"는 내용이 포함돼 파문이 일어났다. 노란색 부분이 마스크 관련 내용. [서승욱 특파원]
하지만 8년에 가까운 기록적인 장기 집권이 심어놓은 ‘손타쿠’란 이름의 바이러스는 이처럼 일본 사회 곳곳에 상처를 내고 있다.
한·일관계도 이를 피해 가지 못하고 있다. 일본 정부 내 사정에 밝은 도쿄의 소식통은 "한·일외교의 최전선에 서 있는 일본 외무성의 존재감이 사라진 것도 손타쿠의 영향"이라고 했다.
이 소식통은 "한국에 대한 아베 총리와 총리관저의 강경 기류를 의식한 모테기 도시미쓰(茂木敏充) 외상이 한·일 관계에 전혀 의욕이 없다"며 "아베 내각에서 외상을 지낸 전임자 두 사람과 비교하면 한국에 대한 이해도가 턱없이 낮고, 한국에는 관심 자체를 두지 않는다"고 말했다.
전임자들은 달랐다. '너무 신중하고 우유부단한 게 약점'이라던 기시다 후미오(岸田文雄·2012년 12월~2017년 8월) 전 외상조차도 결정적인 순간엔 제 목소리를 냈다.
2015년 위안부 합의 타결 직전 보수파의 반발을 걱정하며 머뭇거리던 아베 총리를 관저로 찾아가 "당신이 결단하지 않으면 안 된다"고 몰아세운 것이 대표적 장면이다.
바통을 이어받은 ‘괴짜 외상’ 고노 다로(河野太郞·2017년 8월~2019년 9월)는 더 적극적이었다. 징용 갈등의 출구가 안 보이자 "양국 정부·기업이 경제협력 명목의 기금을 창설하자"는 아이디어를 총리 관저도 모르게 강경화 외교부 장관에게 제안했다.
2018년 말엔 당시 국회의원도 아니었던 더불어민주당 김민석 민주연구원 원장과 단둘이 도쿄에서 오찬을 하며 한·일관계의 돌파구를 모색했다.
지난 3월 일본 총리관저에서 열린 각의를 앞두고 사진 촬영에 응한 아베 신조 총리(가운데)와 모테기 도시미쓰 외상(왼쪽), 아소 다로 재무상(오른쪽). 모테기 외상에 대해선 "한국에 대해 강경한 아베 총리관저의 기류를 읽어서인지 전임자들과 달리 한일관계엔 전혀 의욕이 없다"는 평가가 나온다. [지지통신 제공]
실제로 그가 외상에 취임한 뒤 9개월 동안 한·일관계와 관련된 진전된 입장 표명이나 아이디어가 주목을 끈 일이 없다.
이런 상황에선 외무성내 에이스급으로 통하는 '가나스기 겐지(金杉憲治) 외무심의관-다키자키 시게키(瀧崎成樹) 아시아·대양주국장- 나가오 시게토시(長尾成敏) 한국과장' 등의 한국 라인이 힘을 쓰기 어렵다는 분석이 나온다.
일본에서 '손타쿠'가 문제라면 한국에선 정권과 코드를 맞추려는 관료 사회의 행태가 자주 도마 위에 오른다.
현 정부의 남북관계 중시·대일 강경 기조를 의식해 "남북통일에 기여하기 위해 외교관이 됐다"고 공공연하게 자기 홍보를 하거나 마치 '항일 투사'인 양 행동하는 유형의 관료들 이야기다.
한·일관계가 전문 분야인 일본의 유력 언론인들 중엔 "일부 한국 외교관은 공·사석을 가리지 않고, 누구를 만나든 처음부터 끝까지 자기주장만 일방적으로 쏟아낸다""외교관이라기보다 정치인처럼 행세한다"는 불만을 토로하는 이들이 적지 않다.
지난해 11월 일본 나고야에서 회담한 강경화 외교부 장관(왼쪽)과 모테기 도시미쓰 일본 외상(오른쪽). 잠시 소강상태에 들어갔던 양국간 갈등이 다시 고개를 드는 상황에서 청와대와 총리관저의 눈치를 살피는데만 급급한 양국의 외교 당국이 제 역할을 하지 못하고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지지통신 제공]
심지어 자신이 한·일 관계에 직·간접적으로 관여하고 있음에도 한·일 관계 개선의 필요성을 강조하는 언론사 기획 보도에 대해 "정부를 비판하려는 불순한 의도가 있다"며 막말을 쏟아내는 경우도 있다고 한다. 이런 자세로 한·일관계에 돌파구가 뚫릴 리 없다.
지난해 11월 한국 정부의 한ㆍ일 군사정보보호협정(GSOMIAㆍ지소미아) 종료 유예, 어렵게 성사됐던 12월 정상회담 등으로 잠시 소강상태에 접어들었던 한·일 갈등의 시계가 시한폭탄처럼 최근 다시 움직이기 시작했다.
한국 정부는 지난 2일 일본의 수출 규제 조치에 대한 WTO(세계무역기구) 제소 절차 재개를 선언했다. '한·일관계의 화약고'라는 징용 관련 일본 기업 압류 자산의 현금화 절차도 한국 법원의 공시 송달로 다시 속도를 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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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쿄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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