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되어 놓인 시간이 싫어했다. 정도였다. 순해 붙어4일간 베트남 3곳의 도시를 돌아봤다. 달랏, 무이네, 호치민. 그에 대한 기록.
●DAY 1 Da Lat베트남의 영원한 봄을 찾아서
'달랏'은 베트남 사람들이 가장 사랑하는 여행지다. 해발 1,500m 고지에 세워진 이 도시는 연중 평균 기온이 18도를 넘나든다. 연중 시원한 기온과 큰 일교차, 건조한 바람이 뒤섞이며 '베트남의 영원한 봄'이라 불리는 특유의 기후대를 만들었다. 이토록 쾌적한 기후는 달랏의 차, 커피, 포도 재배 같은 고산 산업을 가능케 했고 도시의 역사, 경제, 생활 방식에까지 영향을 남겼 알라딘릴게임 다.
'달랏'이란 지명에는 두 가지 주장이 녹아 있다. 누군가는 달랏이 베트남에서 유일하게 라틴어에서 유래된 이름이라고 말한다. '어떤 이에게는 즐거움을, 어떤 이에게는 신선함을(Dat Aliis Laetitiam Aliis Temperiem)'이라는 라틴어를 줄여 프랑스인들이 '달랏(Dalat)'이라 부른 것이란 주장이다. 또 다른 의 황금성게임다운로드 견으로는 달랏은 지역 고유 소수민족인 '랏(Lat)족'이 대대로 사용해 온 지명일 것이라는 주장이다. 이 서로 다른 두 갈래의 주장이 달랏이라는 도시의 정체성을 이룬다. 달랏은 프랑스 식민정부에 의해 인공적으로 설계된 도시이자, 동시에 그 이전부터 이곳에서 살아가는 현지인들의 변함없는 태도와 삶으로 하여금 스스로 문화를 되찾은 베트남의 휴양지다.
릴짱릴게임 오늘의 달랏을 만든 이는 '알렉상드르 예르생(Alexandre Yersin)'이라는 사람이다. 그는 프랑스의 화학자인 '루이 파스퇴르'의 제자이자, 당대 유명한 박테리아 학자였는데 1890년대 이 지역을 탐사하던 중 달랏을 발견한다. 그는 곧장 호치민의 무더위를 피할 수 있는 시원하고 쾌적한 달랏을 프랑스 식민정부에 개발을 요청했고, 그들은 곧장 야마토게임장 달랏에 호수를 만들고 고급 빌라를 지었으며 철로를 깔기 시작했다. 1907년에 첫 번째 호텔이 지어지며 달랏은 휴양 도시로 자리 잡는다. 사실 달랏을 진짜 아름답게 만드는 건, 가리지 않고 사방에 피어나 있는 꽃의 공이 크다. 달랏은 꽃을 키우기 좋은 기후 조건이기 때문에, 자연스럽게 화훼산업으로도 이름을 날린다. 문득 프랑스인들은 달랏의 자연환경이 커피 릴게임방법 재배에도 매우 적합하다는 것을 깨닫고는 이곳을 아예 커피 산지로 삼기에 이른다. 과거 베트남은 아라비카종보다 맛이 쓰고 카페인이 강한 대신 병충해에 강한 로부스타종을 주로 생산했는데, 고지대인 달랏은 아라비카 품종의 품질이 가장 안정적으로 유지되는 기후로 평가된다.
손 파카마라 커피 팜(Son Pacamara Coffee Farm)은 특히 커피의 품종 관리와 가공 방식에서 달랏 최고로 꼽히는 커피 농장이다. '손'은 농장주의 이름이고, '파카마라'는 원두 이름이다. 파카마라는 엘살바도르의 자부심이라고도 불리는 커피 품종인데, 열대과일 같은 화려한 산미와 부드러운 보디감이 특징이다. 수확량이 워낙 적고 까다로운 품종인 탓에 원두 가격이 다소 높은 편이다. 손 파카마라 커피 팜에서 생산하는 다양한 종류의 커피를 경험해 보고 싶다면, 커피 농장 투어를 신청해 봐도 좋다. 약 만 그루에 달하는 커피나무 농장 곳곳을 둘러보며 생두를 재배해 수확하고, 로스팅을 거쳐 마시기까지의 과정을 속성으로 배워 볼 수 있다. No Secret Only Passion(비밀이란 없고 오로지 열정뿐). 농장 사훈답게 달랏 커피에 대한 주인장의 열변을 감상할 수 있다.
달랏의 영원한 봄은 차(Tea)와 와인도 싹틔웠다. 강수량이 고르게 분포하고 아침저녁의 기온 차가 크며, 해발 1,600m 안팎에서 형성되는 서늘한 공기가 찻잎과 포도의 향과 산미를 안정적으로 끌어올려 주기 때문이다. 까닷 티 언덕(Cau Dat Tea Hill)은 달랏의 차 산업을 상징적으로 마주할 수 있는 장소다. 1927년, 프랑스가 설립해 지금까지 운영되는 베트남 최장수 차 농장이기도 하다.
달랏 와인의 현재는 라도라 와이너리(Ladora Winery)에 있다. 이곳은 차로 2~3시간 거리에 있는 해안 지역, '닌빈(Ninh Thuan)'의 포도를 사용해 1년에 500~600만 병을 생산 중인 로컬 와이너리다. 물론 와이너리의 시작은 프랑스인들에 의해 설립되었지만, 현재는 베트남 민간 소유로 운영 중이다. 시그니처 라인은 베트남에서 만든 최초의 클래식 와인 브랜드인 '샤또 달랏(Chateau Dalat)', 기어코 달랏 와인 몇 병을 품에 안고서야 호텔로 향했다.
아나 만다라 달랏에 도착해 방으로 들어서는 순간, 이 도시가 봄만큼 다정한 여행지라고 느껴졌다. 호텔조차 막연히 어느 시간으로 여행자를 안내한다. 아나 만다라 달랏은 1920년대에 지어진 프랑스식 빌라 17채를 복원한 호텔이다. 소나무숲 곳곳에 흩어져 있던 어느 프랑스 의사와 기술자의 집, 누군가의 별장을 하나의 부지에 오순도순 모아 냈다. 총 87개의 객실은 거실과 부부의 방, 누이와 남동생의 방처럼 취향 따라, 빌라마다 규모가 각기 다르다. 빌라의 세월이 그대로 느껴지는 돌계단 한 켠에 어느 꽃망울이 참 어여쁘게도 여물었다.
●DAY 2 Da Lat달랏을 달랏답게 여행하는 방법
아무래도 달랏을 여행하다 보면, 쌀국수처럼 필연적으로 마주하게 되는 여행지 몇 곳이 있다. 가장 대표적인 곳이 달랏 기차역이다. 1938년에 건설되어 2001년 역사 건축물로 지정됐다. 풍부한 색감과 기하학적 문양, 호화로운 장식성이 특징인 프랑스의 아르데코(Art Deco) 스타일과 베트남 중부 고원지대의 소수민족 가옥 양식을 변주한 지붕선이 특징이다. 현재는 1970년대 전쟁으로 파손된 철로를 7km가량 복원해 관광 열차를 운영 중이다.
크레이지 하우스도 빼놓을 수 없다. 베트남의 독립운동가이자 2대 국가 주석을 지낸 '쯔엉찐(Truong Chinh)'의 딸인 '당비엣응아(Dang Viet Nga)'의 작품이다. 그녀는 스페인의 건축가, '가우디'의 철학과 자연에서 영감을 받아 이곳을 설계해 건축했다. 나무뿌리, 버섯, 동굴, 동물, 해저의 형상이 뒤엉킨 내부를 따라 걷다 보면 건축물이라기보다는 거대한 어느 유기체처럼 느껴지기도 한다. 크레이지 하우스의 일부는 '항응아 게스트하우스'로 운영되는데, 10개 남짓 객실이 마련되어 있어 실제 숙박도 가능하다.
린푸옥 사원은 달랏을 여행하는 여행자들의 사랑방이나 다름없는 대표 사원이다. 이곳은 '베자이(Ve Chai) 사원'이라고도 불린다. '베자이'는 병 같은 재활용품을 수거하는 사람을 뜻하는데, 린푸옥 사원의 모든 건물과 조형물이 깨진 유리와 도자기 조각으로 꾸며졌기 때문에 붙은 별칭이다. 사원 전체를 뒤덮은 도자기와 유리 파편 모자이크는 전통적인 불교 건축의 엄숙함과는 거리가 멀다. 용, 연꽃, 불상 등 파편 타일로 재해석한 모습이 참 현란하다. 사원 한편에는 말린 국화로 장식해 만든 17m 높이의 관음보살상이 자리한다. 이곳까지 다 둘러보고 나면, 누구나 한 번쯤 같은 생각을 하기 마련, 이제 조금은 조용한 곳에 가고 싶다.
달랏의 수많은 여행자를 피해 도착한 곳은 포 벤 도이(Pho Ben Doi) 갤러리다. 이곳에서라면 달랏의 일상과 감각을 조용히 만끽할 수 있다. 포 벤 도이는 달랏의 문화 예술 교류에 힘쓰는 커뮤니티 예술 공간이다. 갤러리 내에는 특별히 거창한 조형물도, 과시적인 설치물도 없다. 대신 도시의 색, 안개, 습도, 고원의 시간을 천천히 드러내는 회화와 사진이 갤러리 일부를 채우고 있을 뿐이다. 포 벤 도이 갤러리는 달랏 벽화골목(Doc Nha Lang) 프로젝트를 이끌었다. 벽화골목은 현지인들이 운영하는 자그마한 밥집, 옷가게, 세탁소가 늘어선 평범한 골목이었는데, 이 프로젝트 이후 카페, 바가 들어서며 여행자들에게 사랑받는 공간으로 거듭났다.
●DAY 3 Mui Ne사막과 바다, 요정의 샘
이른 아침부터 달랏을 출발해 굽이굽이 산길을 따라 4시간 정도를 달리니, 어느덧 무이네에 도착했다. 달랏의 선선함은 온데간데없고, 들이켜는 숨에 묵직한 바닷내음만 가득하다. 달랏의 봄을 지나자 무이네의 여름이 시작됐다.
무이네는 베트남에서 가장 이국적인 해안 마을이다. 해변과 사막, 이토록 기묘한 조합의 여행이 무이네에서 가능하다. '무이(Mui)'는 베트남어로 곶을, '네(Ne)'는 피난처를 의미한다. 예부터 어부들이 폭풍을 피해 숨던 지형이라는 뜻이다. 실제로 무이네 일대는 바람이 거세기로 유명해, 어부들이 이곳에서 바람이 잦아들 때까지 배를 대고 머무르곤 했다. 그 모습을 피싱 빌리지에서 상상할 수 있다. 바다 가득 베트남 어선이 가득 정박해 있다. 피싱 빌리지는 새벽 6시부터 8시까지가 가장 분주하다. 로브스터, 게, 새우, 생선, 조개 등 모든 해산물이 항구로 모이는 시간이기 때문이다. 단순히 해산물을 옮기기만 하는 것이 아니라 해변에서 직접 손질부터 판매까지 이루어지기 때문에, 낭만적인 풍경과는 조금 동떨어진 냄새가 나기도 한다. 해안가는 수심이 얕아 '퉁(Thung)'을 타고 어선에 접근해 해산물을 옮긴다. 퉁은 사람 한 명 정도가 들어갈 수 있는 큰 바구니처럼 생긴 베트남 전통 배다.
무이네란 이름처럼 바람이 참 거세긴 하다. 이 거센 바람과 건조한 기후는 무이네에 사구를 만들었다. 해변에서 고운 입자의 모래가 바람에 흩날려 수백년간 쌓여 거대한 모래언덕을 이룬 것이다. 물론 일반적으로 생각하는 끝없는 사막과 비교하자면 크기가 귀여운 수준이지만, 크고 작은 모래언덕이 너울지는 풍경은 가히 이곳을 사막이라 해도 모자람 없다. 거추장스러운 신발을 벗고 모래 위를 거닐면 보드라운 감촉이 발가락 사이를 집요하게 파고든다. 무이네의 모래 알갱이를 자세히 살펴보면 흰색과 황토빛 이외에도 18가지가 넘는 색을 지녔지만, 대표적으로 화이트 샌드와 레드 샌드로 구분한다. 화이트 샌드에서는 베트남에서 가장 광활한 사막 풍경을 바라볼 수 있다.
지프에 올라 요정이 살고 있다는 샘으로 달렸다. 무이네는 대중교통이 잘 갖춰진 곳이 아니다. 그래서 무이네를 자유롭게 여행하고자 하는 여행자라면 백이면 백, 지프 투어를 이용한다. 운전수가 함께 다니기 때문에 목적지만 말하면 이곳저곳 쉽게 이동할 수 있다. 어디든 휘적휘적 걷고 싶은 곳이 사방에 가득하지만, 그중 제일은 역시 요정의 샘이다. 아무리 건조해도 물길이 끊이질 않고, 비가 와도 물이 불어나지 않아 요정의 샘이라고 불린단다. 협곡을 따라 이어지는 물길을 거슬러 오른다. 이곳 주민들은 '미니 그랜드캐년'이라고도 부른단다. 이곳의 수심은 깊게는 1m에서 얕게는 발등 정도 높이에 달한다. 바닥이 대부분 부드러운 모래라지만, 군데군데 나뭇가지나 돌이 있어 아쿠아 슈즈를 착용하고 걷는 것이 안전하다.
●DAY 4 Ho Chi Minh도시의 빠른 박동, 느린 그림자
무이네 사막에서 뒤집어쓴 모래를 훌훌 털고 이번 베트남 여행의 최종 목적지, 호치민으로 향했다. 무이네에서 호치민까지는 차로 약 3시간 30분이면 도착한다. 최근 고속도로가 개통되어 이동 시간이 현저히 줄었다. 호치민의 옛 이름은 사이공(Saigon)이다. 1976년 베트남 남북이 통일되며 호치민으로 개칭됐다. 호치민은 '깨우친 자'라는 뜻인데, 베트남의 초대 국가 주석의 이름이기도 하다. 정확히 말하면 '호치민'은 그가 썼던 150개가 넘는 가명 중 하나이고, 그의 본명은 '응옌 신 꿍(Nguyn Sinh Cung)'으로 알려져 있다.
호치민 도심에 가까워질수록 차량 주변에 오토바이 행렬이 가득 꼬인다. 베트남에 등록된 오토바이 수는 인구 2명당 1대꼴이라고 한다. 사실상 거의 모든 가정이 오토바이를 소유한 셈이다. 달랏과 무이네에서 잠시 잊었던 베트남의 박동이, 호치민에 닿는 순간 또렷이 밀려왔다.
호치민의 별칭은 동양의 파리다. 프랑스 식민지 시절 건립된 옛 건축물과 문화가 지금까지 도심 곳곳에 깃들어 있기 때문이다. 대표적인 곳이 노트르담 대성당과 중앙 우체국이다. 노트르담 대성당은 1863년부터 1880년에 걸쳐 건설된 네오고딕 양식의 교회다. 아쉽게도 현재는 성당 보수 공사가 진행 중이라 가림막이 외관을 둘러싸고 있는 상태다. 중앙 우체국은 1886년에 건설을 시작해 1891년에 완공했다. 당시 프랑스령 인도차이나 정부가 통신망을 정비하기 위해 세운 건물인데 고딕, 르네상스, 프랑스, 아시아 건축양식이 혼재된 것이 특징이다. 현재까지도 우편, 엽서, 우표 판매, 외화 환전 등 일반적인 우체국 업무를 진행하고 있다.
호텔 마제스틱 사이공(Hotel Majestic Saigon)도 눈여겨볼 만하다. 1925년 문을 연 이곳은 프렌치 콜로니얼 양식을 고스란히 품은 채, 사이공 강을 마주한 자리에서 한 세기 가까운 시간을 견뎌 왔다. 로비에서 느껴지는 아르데코풍 디테일이 매력적이다. 호텔 시그니처 바인 'M바'로 향해 진토닉을 한 잔 시켰다. 창밖으로는 여전히 분주한 오토바이의 행렬이 가득하지만, 마제스틱 사이공 내부에는 오래된 세월의 온도와 여유가 여전하다. 호치민이라는 도시의 빠른 박동과 느린 그림자가 포개지는 지점이 바로 이곳이지 않을까 하고 생각했다.
호치민은 연중 공기가 참 뜨겁다. 베트남은 남북으로 가늘고 길게 뻗어 있다. 남쪽에서 북쪽까지 길이가 무려 1,750km에 이르기 때문에 지역마다 기후가 확연히 다르다. 하노이는 우리나라의 늦가을, 초겨울처럼 선선한 날씨가 있는 반면, 남쪽의 호치민은 연중 덥고 습한 열대 기후다. 온몸을 진득하게 감싸는 더위를 피해 들어선 곳은 메종 마루(Maison Marou)다. 베트남 최초의 프리미엄 초콜릿 카페 브랜드다. 카카오의 원두 선택, 가공, 포장까지 전 과정을 직접 책임지는 초콜릿 제조 방식인 빈투바(Bean to Bar) 초콜릿을 맛볼 수 있다. 산뜻한 산미가 감도는 카카오 풍미는 의외로 그 질감이 가벼워, 무더운 날씨에도 부담스럽지 않게 달콤하다.
*한-아세안센터한-아세안센터는 한국과 아세안 10개 회원국 간 경제 및 사회, 문화 분야 협력 증진을 목적으로 2009년 설립된 국제기구다. 이번 베트남 여정은 국제기구 한-아세안센터 (한국과 아세안 10개국 정부 간 설립된 경제 및 사회·문화 협력 증진을 위한 국제기구)에서 주관한 문화관광 증진 행사의 일환으로 추진되었다.
글·사진 강화송 기자 취재협조 한-아세안센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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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AY 1 Da Lat베트남의 영원한 봄을 찾아서
'달랏'은 베트남 사람들이 가장 사랑하는 여행지다. 해발 1,500m 고지에 세워진 이 도시는 연중 평균 기온이 18도를 넘나든다. 연중 시원한 기온과 큰 일교차, 건조한 바람이 뒤섞이며 '베트남의 영원한 봄'이라 불리는 특유의 기후대를 만들었다. 이토록 쾌적한 기후는 달랏의 차, 커피, 포도 재배 같은 고산 산업을 가능케 했고 도시의 역사, 경제, 생활 방식에까지 영향을 남겼 알라딘릴게임 다.
'달랏'이란 지명에는 두 가지 주장이 녹아 있다. 누군가는 달랏이 베트남에서 유일하게 라틴어에서 유래된 이름이라고 말한다. '어떤 이에게는 즐거움을, 어떤 이에게는 신선함을(Dat Aliis Laetitiam Aliis Temperiem)'이라는 라틴어를 줄여 프랑스인들이 '달랏(Dalat)'이라 부른 것이란 주장이다. 또 다른 의 황금성게임다운로드 견으로는 달랏은 지역 고유 소수민족인 '랏(Lat)족'이 대대로 사용해 온 지명일 것이라는 주장이다. 이 서로 다른 두 갈래의 주장이 달랏이라는 도시의 정체성을 이룬다. 달랏은 프랑스 식민정부에 의해 인공적으로 설계된 도시이자, 동시에 그 이전부터 이곳에서 살아가는 현지인들의 변함없는 태도와 삶으로 하여금 스스로 문화를 되찾은 베트남의 휴양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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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 파카마라 커피 팜(Son Pacamara Coffee Farm)은 특히 커피의 품종 관리와 가공 방식에서 달랏 최고로 꼽히는 커피 농장이다. '손'은 농장주의 이름이고, '파카마라'는 원두 이름이다. 파카마라는 엘살바도르의 자부심이라고도 불리는 커피 품종인데, 열대과일 같은 화려한 산미와 부드러운 보디감이 특징이다. 수확량이 워낙 적고 까다로운 품종인 탓에 원두 가격이 다소 높은 편이다. 손 파카마라 커피 팜에서 생산하는 다양한 종류의 커피를 경험해 보고 싶다면, 커피 농장 투어를 신청해 봐도 좋다. 약 만 그루에 달하는 커피나무 농장 곳곳을 둘러보며 생두를 재배해 수확하고, 로스팅을 거쳐 마시기까지의 과정을 속성으로 배워 볼 수 있다. No Secret Only Passion(비밀이란 없고 오로지 열정뿐). 농장 사훈답게 달랏 커피에 대한 주인장의 열변을 감상할 수 있다.
달랏의 영원한 봄은 차(Tea)와 와인도 싹틔웠다. 강수량이 고르게 분포하고 아침저녁의 기온 차가 크며, 해발 1,600m 안팎에서 형성되는 서늘한 공기가 찻잎과 포도의 향과 산미를 안정적으로 끌어올려 주기 때문이다. 까닷 티 언덕(Cau Dat Tea Hill)은 달랏의 차 산업을 상징적으로 마주할 수 있는 장소다. 1927년, 프랑스가 설립해 지금까지 운영되는 베트남 최장수 차 농장이기도 하다.
달랏 와인의 현재는 라도라 와이너리(Ladora Winery)에 있다. 이곳은 차로 2~3시간 거리에 있는 해안 지역, '닌빈(Ninh Thuan)'의 포도를 사용해 1년에 500~600만 병을 생산 중인 로컬 와이너리다. 물론 와이너리의 시작은 프랑스인들에 의해 설립되었지만, 현재는 베트남 민간 소유로 운영 중이다. 시그니처 라인은 베트남에서 만든 최초의 클래식 와인 브랜드인 '샤또 달랏(Chateau Dalat)', 기어코 달랏 와인 몇 병을 품에 안고서야 호텔로 향했다.
아나 만다라 달랏에 도착해 방으로 들어서는 순간, 이 도시가 봄만큼 다정한 여행지라고 느껴졌다. 호텔조차 막연히 어느 시간으로 여행자를 안내한다. 아나 만다라 달랏은 1920년대에 지어진 프랑스식 빌라 17채를 복원한 호텔이다. 소나무숲 곳곳에 흩어져 있던 어느 프랑스 의사와 기술자의 집, 누군가의 별장을 하나의 부지에 오순도순 모아 냈다. 총 87개의 객실은 거실과 부부의 방, 누이와 남동생의 방처럼 취향 따라, 빌라마다 규모가 각기 다르다. 빌라의 세월이 그대로 느껴지는 돌계단 한 켠에 어느 꽃망울이 참 어여쁘게도 여물었다.
●DAY 2 Da Lat달랏을 달랏답게 여행하는 방법
아무래도 달랏을 여행하다 보면, 쌀국수처럼 필연적으로 마주하게 되는 여행지 몇 곳이 있다. 가장 대표적인 곳이 달랏 기차역이다. 1938년에 건설되어 2001년 역사 건축물로 지정됐다. 풍부한 색감과 기하학적 문양, 호화로운 장식성이 특징인 프랑스의 아르데코(Art Deco) 스타일과 베트남 중부 고원지대의 소수민족 가옥 양식을 변주한 지붕선이 특징이다. 현재는 1970년대 전쟁으로 파손된 철로를 7km가량 복원해 관광 열차를 운영 중이다.
크레이지 하우스도 빼놓을 수 없다. 베트남의 독립운동가이자 2대 국가 주석을 지낸 '쯔엉찐(Truong Chinh)'의 딸인 '당비엣응아(Dang Viet Nga)'의 작품이다. 그녀는 스페인의 건축가, '가우디'의 철학과 자연에서 영감을 받아 이곳을 설계해 건축했다. 나무뿌리, 버섯, 동굴, 동물, 해저의 형상이 뒤엉킨 내부를 따라 걷다 보면 건축물이라기보다는 거대한 어느 유기체처럼 느껴지기도 한다. 크레이지 하우스의 일부는 '항응아 게스트하우스'로 운영되는데, 10개 남짓 객실이 마련되어 있어 실제 숙박도 가능하다.
린푸옥 사원은 달랏을 여행하는 여행자들의 사랑방이나 다름없는 대표 사원이다. 이곳은 '베자이(Ve Chai) 사원'이라고도 불린다. '베자이'는 병 같은 재활용품을 수거하는 사람을 뜻하는데, 린푸옥 사원의 모든 건물과 조형물이 깨진 유리와 도자기 조각으로 꾸며졌기 때문에 붙은 별칭이다. 사원 전체를 뒤덮은 도자기와 유리 파편 모자이크는 전통적인 불교 건축의 엄숙함과는 거리가 멀다. 용, 연꽃, 불상 등 파편 타일로 재해석한 모습이 참 현란하다. 사원 한편에는 말린 국화로 장식해 만든 17m 높이의 관음보살상이 자리한다. 이곳까지 다 둘러보고 나면, 누구나 한 번쯤 같은 생각을 하기 마련, 이제 조금은 조용한 곳에 가고 싶다.
달랏의 수많은 여행자를 피해 도착한 곳은 포 벤 도이(Pho Ben Doi) 갤러리다. 이곳에서라면 달랏의 일상과 감각을 조용히 만끽할 수 있다. 포 벤 도이는 달랏의 문화 예술 교류에 힘쓰는 커뮤니티 예술 공간이다. 갤러리 내에는 특별히 거창한 조형물도, 과시적인 설치물도 없다. 대신 도시의 색, 안개, 습도, 고원의 시간을 천천히 드러내는 회화와 사진이 갤러리 일부를 채우고 있을 뿐이다. 포 벤 도이 갤러리는 달랏 벽화골목(Doc Nha Lang) 프로젝트를 이끌었다. 벽화골목은 현지인들이 운영하는 자그마한 밥집, 옷가게, 세탁소가 늘어선 평범한 골목이었는데, 이 프로젝트 이후 카페, 바가 들어서며 여행자들에게 사랑받는 공간으로 거듭났다.
●DAY 3 Mui Ne사막과 바다, 요정의 샘
이른 아침부터 달랏을 출발해 굽이굽이 산길을 따라 4시간 정도를 달리니, 어느덧 무이네에 도착했다. 달랏의 선선함은 온데간데없고, 들이켜는 숨에 묵직한 바닷내음만 가득하다. 달랏의 봄을 지나자 무이네의 여름이 시작됐다.
무이네는 베트남에서 가장 이국적인 해안 마을이다. 해변과 사막, 이토록 기묘한 조합의 여행이 무이네에서 가능하다. '무이(Mui)'는 베트남어로 곶을, '네(Ne)'는 피난처를 의미한다. 예부터 어부들이 폭풍을 피해 숨던 지형이라는 뜻이다. 실제로 무이네 일대는 바람이 거세기로 유명해, 어부들이 이곳에서 바람이 잦아들 때까지 배를 대고 머무르곤 했다. 그 모습을 피싱 빌리지에서 상상할 수 있다. 바다 가득 베트남 어선이 가득 정박해 있다. 피싱 빌리지는 새벽 6시부터 8시까지가 가장 분주하다. 로브스터, 게, 새우, 생선, 조개 등 모든 해산물이 항구로 모이는 시간이기 때문이다. 단순히 해산물을 옮기기만 하는 것이 아니라 해변에서 직접 손질부터 판매까지 이루어지기 때문에, 낭만적인 풍경과는 조금 동떨어진 냄새가 나기도 한다. 해안가는 수심이 얕아 '퉁(Thung)'을 타고 어선에 접근해 해산물을 옮긴다. 퉁은 사람 한 명 정도가 들어갈 수 있는 큰 바구니처럼 생긴 베트남 전통 배다.
무이네란 이름처럼 바람이 참 거세긴 하다. 이 거센 바람과 건조한 기후는 무이네에 사구를 만들었다. 해변에서 고운 입자의 모래가 바람에 흩날려 수백년간 쌓여 거대한 모래언덕을 이룬 것이다. 물론 일반적으로 생각하는 끝없는 사막과 비교하자면 크기가 귀여운 수준이지만, 크고 작은 모래언덕이 너울지는 풍경은 가히 이곳을 사막이라 해도 모자람 없다. 거추장스러운 신발을 벗고 모래 위를 거닐면 보드라운 감촉이 발가락 사이를 집요하게 파고든다. 무이네의 모래 알갱이를 자세히 살펴보면 흰색과 황토빛 이외에도 18가지가 넘는 색을 지녔지만, 대표적으로 화이트 샌드와 레드 샌드로 구분한다. 화이트 샌드에서는 베트남에서 가장 광활한 사막 풍경을 바라볼 수 있다.
지프에 올라 요정이 살고 있다는 샘으로 달렸다. 무이네는 대중교통이 잘 갖춰진 곳이 아니다. 그래서 무이네를 자유롭게 여행하고자 하는 여행자라면 백이면 백, 지프 투어를 이용한다. 운전수가 함께 다니기 때문에 목적지만 말하면 이곳저곳 쉽게 이동할 수 있다. 어디든 휘적휘적 걷고 싶은 곳이 사방에 가득하지만, 그중 제일은 역시 요정의 샘이다. 아무리 건조해도 물길이 끊이질 않고, 비가 와도 물이 불어나지 않아 요정의 샘이라고 불린단다. 협곡을 따라 이어지는 물길을 거슬러 오른다. 이곳 주민들은 '미니 그랜드캐년'이라고도 부른단다. 이곳의 수심은 깊게는 1m에서 얕게는 발등 정도 높이에 달한다. 바닥이 대부분 부드러운 모래라지만, 군데군데 나뭇가지나 돌이 있어 아쿠아 슈즈를 착용하고 걷는 것이 안전하다.
●DAY 4 Ho Chi Minh도시의 빠른 박동, 느린 그림자
무이네 사막에서 뒤집어쓴 모래를 훌훌 털고 이번 베트남 여행의 최종 목적지, 호치민으로 향했다. 무이네에서 호치민까지는 차로 약 3시간 30분이면 도착한다. 최근 고속도로가 개통되어 이동 시간이 현저히 줄었다. 호치민의 옛 이름은 사이공(Saigon)이다. 1976년 베트남 남북이 통일되며 호치민으로 개칭됐다. 호치민은 '깨우친 자'라는 뜻인데, 베트남의 초대 국가 주석의 이름이기도 하다. 정확히 말하면 '호치민'은 그가 썼던 150개가 넘는 가명 중 하나이고, 그의 본명은 '응옌 신 꿍(Nguyn Sinh Cung)'으로 알려져 있다.
호치민 도심에 가까워질수록 차량 주변에 오토바이 행렬이 가득 꼬인다. 베트남에 등록된 오토바이 수는 인구 2명당 1대꼴이라고 한다. 사실상 거의 모든 가정이 오토바이를 소유한 셈이다. 달랏과 무이네에서 잠시 잊었던 베트남의 박동이, 호치민에 닿는 순간 또렷이 밀려왔다.
호치민의 별칭은 동양의 파리다. 프랑스 식민지 시절 건립된 옛 건축물과 문화가 지금까지 도심 곳곳에 깃들어 있기 때문이다. 대표적인 곳이 노트르담 대성당과 중앙 우체국이다. 노트르담 대성당은 1863년부터 1880년에 걸쳐 건설된 네오고딕 양식의 교회다. 아쉽게도 현재는 성당 보수 공사가 진행 중이라 가림막이 외관을 둘러싸고 있는 상태다. 중앙 우체국은 1886년에 건설을 시작해 1891년에 완공했다. 당시 프랑스령 인도차이나 정부가 통신망을 정비하기 위해 세운 건물인데 고딕, 르네상스, 프랑스, 아시아 건축양식이 혼재된 것이 특징이다. 현재까지도 우편, 엽서, 우표 판매, 외화 환전 등 일반적인 우체국 업무를 진행하고 있다.
호텔 마제스틱 사이공(Hotel Majestic Saigon)도 눈여겨볼 만하다. 1925년 문을 연 이곳은 프렌치 콜로니얼 양식을 고스란히 품은 채, 사이공 강을 마주한 자리에서 한 세기 가까운 시간을 견뎌 왔다. 로비에서 느껴지는 아르데코풍 디테일이 매력적이다. 호텔 시그니처 바인 'M바'로 향해 진토닉을 한 잔 시켰다. 창밖으로는 여전히 분주한 오토바이의 행렬이 가득하지만, 마제스틱 사이공 내부에는 오래된 세월의 온도와 여유가 여전하다. 호치민이라는 도시의 빠른 박동과 느린 그림자가 포개지는 지점이 바로 이곳이지 않을까 하고 생각했다.
호치민은 연중 공기가 참 뜨겁다. 베트남은 남북으로 가늘고 길게 뻗어 있다. 남쪽에서 북쪽까지 길이가 무려 1,750km에 이르기 때문에 지역마다 기후가 확연히 다르다. 하노이는 우리나라의 늦가을, 초겨울처럼 선선한 날씨가 있는 반면, 남쪽의 호치민은 연중 덥고 습한 열대 기후다. 온몸을 진득하게 감싸는 더위를 피해 들어선 곳은 메종 마루(Maison Marou)다. 베트남 최초의 프리미엄 초콜릿 카페 브랜드다. 카카오의 원두 선택, 가공, 포장까지 전 과정을 직접 책임지는 초콜릿 제조 방식인 빈투바(Bean to Bar) 초콜릿을 맛볼 수 있다. 산뜻한 산미가 감도는 카카오 풍미는 의외로 그 질감이 가벼워, 무더운 날씨에도 부담스럽지 않게 달콤하다.
*한-아세안센터한-아세안센터는 한국과 아세안 10개 회원국 간 경제 및 사회, 문화 분야 협력 증진을 목적으로 2009년 설립된 국제기구다. 이번 베트남 여정은 국제기구 한-아세안센터 (한국과 아세안 10개국 정부 간 설립된 경제 및 사회·문화 협력 증진을 위한 국제기구)에서 주관한 문화관광 증진 행사의 일환으로 추진되었다.
글·사진 강화송 기자 취재협조 한-아세안센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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